토요타 자동차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다. 연간 판매 목표를 1,000만대로 잡을 정도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고고(孤高)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초일류 기업도 시작은 미약했다. 옷감을 짜는 방직기를 생산하던 작은 기업이 토요타 자동차의 모태라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치열했던 역사가 주는 교훈은 크다.
뿌리가 없는 열매는 없다. 뿌리를 소중히 여길수록 열매의 의미는 한층 값지다. 토요타자동차는 그들이 지나온 발자취를 잘 보존하고 있다. 기념관과 박물관을 만들어 스스로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미래를 설계한다. 단지 자기 만족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은 연간 45만 명이 일부러 입장료를 내고 찾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잘 정리된 기록의 공간은 기억을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공감의 터전이다.
최근 ‘2023 재팬모빌리티쇼’ 취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 기자들을 위해 토요타 코리아가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과 ‘산업기술 기념관’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토요타 자동차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 기념관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은 규모는 작지만 창업 초기의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도록 꾸몄다. 반면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은 전시 공간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 종일을 투자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엄청나다. 전시관에는 실물 방직기와 실제 자동차 제조시설들이 들어와 있고, 관람객들은 전시물 앞에 비치된 버튼을 눌러 실물 기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쿠라가이케 기념관이 ‘과거’에 초점이 맞춰 있다면 산업기술 박물관은 현재와 미래에 더 시선이 가 있다.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TOYOTA KURAGAIKE COMMEMORATIVE HALL, 아이치현 토요타시)은 1974년 9월에 설립됐다. 1937년 창립된 토요타 자동차가 누적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한 시점이 바로 그 때였다. 지금이야 한 해에 1,000만대 생산을 바라보지만 당시만 해도 누적 1,000만대를 돌파하는데 37년이 걸렸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전시물은 역시 방직기다. 토요타 자동차의 ‘혼’이 여기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토요타자동차의 창업자는 토요다 키이치로이지만 방직기를 제작한 이는 키이치로의 아버지인 토요다 사키치다.
토요다 사키치는 당대의 이름난 발명가였다.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두 대의 방직기가 바로 토요다 사키치의 발명품이다. 첫 번째 제품은 나무와 철로 만들어 제조 원가를 낮춘 토요다 역직기로 1896년에 제작됐지만 전원을 넣으면 지금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바로 옆의 기계는 1924년에 발명된 자동직기 G타입 제품으로 논스톱으로 셔틀을 교체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두 대의 방직기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었다. 토요타자동차의 철학을 대변하는 기계였다. 전시관 안내를 맡은 미야코 요리야스 쿠라가이케 기념관 부관장은 “토요다 사키치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너무나 힘들게 베를 짜는 모습이 안타까워’ 첫 번째 방직기를 발명했다”고 소개했다. 두 번째 방직기는 첫 제품에서 부족했던 기능들을 획기적으로 보완해 현대적인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기기다.
미야코 요리야스 부관장은 “두 기기를 통해 엿볼 수 있는 토요다 가문의 철학은 애민정신이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토요타자동차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던 토요다 키이치로는 포드와 GM의 값비싼 자동차가 시장을 지배하던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대중을 위한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신념을 세웠다.
낮에 방직기를 만들던 공장은 밤만 되면 자동차를 연구하는 연구실로 탈바꿈했다. 오랜 기간의 준비와 각고의 노력 끝에 1936년 9월 최초의 토요타 승용차 ‘토요다 AA 세단’이 탄생하게 된다. 이 모델에 채택된 유선형 구조는 당시엔 획기적인 스타일이었으며,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키이치로의 의지를 이 차에서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토요타자동차의 창업과정이 각종 기록물과 모형으로 세세하게 설명이 돼 있는 곳이 쿠라가이케 기념관이다.
창업기를 소개하는 시설인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은 토요타 창업 전시실과 쿠라가이케 아트살롱, 난잔(南山)농원으로 불린 구 토요다 키이치로 저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창업 전시실에는 1955년 일본 최초로 생산된 완성차, ‘토요펫 크라운 모델 RS’도 전시돼 있는데 이 차를 기점으로 비로소 일본 국산차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Toyota Commemorative Museum of Industry and Technology, 나고야시 니시구)은 1994년 6월 토요다 사키치가 자동직기 연구 및 개발을 위해 지은 시범공장의 건물을 활용해 개관했다.
시설과 규모가 쿠라가이케 기념관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자료도 방대하다. 쿠라가이케 기념관과는 설립 목적도 다르다.
시설을 안내한 요시오카 신이치 시니어 어드바이저는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은 기술혁신과 산업발전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제품 제조(모노즈쿠리) 역사에 대한 학습의 장으로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말했다.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시설 자체로 정부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 2007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 산업 유산의 가치를 교육하고 그에 대한 인식을 높이며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근대화 산업 유산’에 등재했다.
기념관은 크게 섬유기계관, 자동차관으로 나뉜다. 두 전시실에는 방직기의 토요다 사키치, 자동차의 토요다 키이치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각 전시실에서는 전시물을 활용해 다양한 시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근대 일본의 핵심산업 가운데 하나인 섬유기계 원형직기와 증기기관, 일본 산업발전을 이끈 자동차 공학의 주조, 단조, 절삭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공업’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있다.
섬유기계관은 다이쇼 시대 세워진 방직공장을 활용한 공간으로 당시의 기둥과 대들보,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시실에서는 실을 뽑고, 짜는 초기의 도구부터 방적기와 직기 기술의 발전 과정, 현대의 메커트로닉스 장치의 섬유기계까지 약 100대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특히, 토요다 사키치가 1924년에 발명한 G형 자동직기는 종합적 성능과 경제성에서 세계 제일이라 평가받으며 각국의 섬유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전시된 G형 자동직기 제1호기는 기계 기술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기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자동차관에서는 토요타의 자동차 제작을 다양한 각도에서 소개한다.
자동차 공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실은 자동차 사업 창업기, 시대를 내다본 차량 개발, 개발기술, 생산기술, 토요다 키이치로 등 총 5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1936년 출시한 토요타 AA형 승용차, 1955년 생산된 초대 크라운 등 시대를 대표하는 9대의 자동차와 안전기술, 고연비 기술, 배기가스 감축 기술 등 토요타 자동차 안에 담긴 기술력의 역사를 한 공간에서 견학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념관에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볼거리가 있다.
토요타 기념관 로비에 있는 원형직기다. 대부분의 방직기는 평면으로 된 천을 생산해 필요에 따라 자르거나 붙여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이 원형직기는 원통형 천을 이음매 없이 만들어 낸다.
직조공정을 자동화하는데 성공한 토요다 사키치는 최소한의 공정으로 넓은 천 조각을 조용히 직조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 1906년 원형 직기를 발명하게 된다. 최적의 원운동으로 작동하는 이 기계는 직물직조 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19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전시된 원형직기는 1924년에 제작된 것으로 광범위한 시험을 거친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기계이다.
이 원형직기는 토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의 핵심 철학을 웅변하는 상징물로 오늘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