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59) 감독은 과연 경기 중 상대전술을 파악해 기민하게 대응할 능력이 있긴 한 걸까? 없는 것 같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축구대표팀은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튀니지를 상대로 이강인의 멀티골과 황의조의 쐐기골이 터져 4-0 완승을 거뒀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7개월 만에 안방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경기 전부터 여러 변수가 있었다. 에이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부터 사타구니에 불편함을 느꼈다. 귀국 후 3일 연속 팀 훈련에서 빠진 손흥민은 결국 튀니지전 결장했다. “손흥민은 챔스를 안 뛰어 덜 피곤하다”고 발언한 뒤 영국언론의 뭇매를 받은 클린스만이 결국 토트넘 눈치를 봤다.
대표팀 공격전술을 책임지는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는 모친이 위독한 상황으로 12일에야 대표팀에 합류했다. 협회 관계자는 “클린스만 감독도 세계적 공격수 출신이다. 공격전술은 클린스만이 짜고, 수비전술은 차두리 코치가 짠다.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손흥민이 결장한 가운데 클린스만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짰다. 최전방에 조규성, 2선에 황희찬, 이강인, 이재성이 섰다. 박용우와 홍현석이 공수를 조율하고 이기제,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 포백이었다. 골키퍼는 김승규였다.
전반전 내내 한국은 슈팅다운 슈팅 한 번 못해보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강인이 세컨톱으로 나섰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이강인이 전방으로 올라가니 그의 날카로운 크로스와 스루패스를 살릴 수 있는 장면도 없었다. 손흥민의 결장으로 측면에서 확실한 파괴력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조규성의 머리만 보고 무리한 크로스를 올리는 장면이 많았다.
30분 넘게 공격이 지체됐지만 클린스만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답답했던 선수들이 직접 공격전술을 바꿨다.
이강인은 후반전 이재성과 포지션을 바꿔 오른쪽 측면으로 빠졌다. 이때부터 한국 공격이 살아났다. 이강인이 측면을 흔들었고 계속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균형이 무너지자 다른 쪽 공격도 살아났다.
이강인이 터트린 두 골은 순전히 개인의 역량으로 만든 골이었다. 이강인은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첫 골을 뽑았고, 환상적인 개인기로 추가골까지 만들었다. 상대 자책골로 기록된 김민재의 세 번째 헤더골도 이강인이 올린 크로스였다. 이강인이 클린스만을 구한 셈이다.
그때 까지만 해도 클린스만이 지시한 전술적 변화가 이강인을 살린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경기 후 이강인 본인이 직접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강인은 "감독님께 (하프타임에) 포지션 변경을 요청하니 들어주셨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반영해주신 감독님과 재성이형에게 감사하다. 팀 승리가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결국 클린스만이 지시한 포지션 변경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알아서 전술을 짰고, 클린스만은 한 것이 없었다. 유연하게 선수들 요구를 들어준 것이 클린스만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경기 후 클린스만은 “(이강인이) 축구 선수가 아닌 연예인 대우를 받고 있는데 연예인은 골을 넣지 않는다.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겸손하고 배고프게, 축구에 집중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느닷없이 이강인의 ‘연예인병’을 걱정했다.
한국은 이제 17일 수원에서 베트남을 상대한다. 베트남이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나올 것이 자명하다. 클린스만은 이강인 ‘연예인병’ 걱정 대신 베트남 수비를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헤어초크 코치가 복귀했으니 공격전술은 다시 그의 담당이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