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7위에 그친 남자농구대표팀의 ‘항저우 참사’를 두고 농구계에서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추일승 감독이 이끌었던 남자농구대표팀은 6일 중국 항저우 저장대 체육관에서 개최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7-8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74-55로 이겼다. 한국은 역대최저인 7위로 대회를 마쳤다. 종전 최저성적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5위였다.
한국은 3진이 나선 일본과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서 77-83으로 패한 것이 결정적 참사의 원인이었다. 이후 12강으로 밀린 한국은 중국과 8강전(70-84패), 이란과 5-8위 결정전(82-89)에서 모두 무기력하게 참패했다.
아시아 7위 참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농구계에서 서로 힘을 모아 냉철하게 진단하고 과감하게 제도를 개선하는 업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농구는 여전히 ‘누구 때문에 성적이 안 나왔는지’ 서로 책임을 따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구원로 외압설’이다. 농구계에서 “방열 전 농구협회장 등 농구원로들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추일승 감독에게 ‘FIBA 심판에게 찍힌 이대성과 최준용을 선발하지 마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써서 전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방열 전 회장은 OSEN과 통화에서 “처음 듣는 소리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FIBA 기술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각국의 전력분석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추일승 감독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자료는 전달하지 못했다. 대회 중에는 일체 전화나 문자 등 연락을 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뒤 추 감독에게 먼저 연락이 와서 ‘수고했다’고 격려한 것이 전부”라고 소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컵 8강전에서 뉴질랜드에 78-88로 패했다. 주장 이대성이 상대선수와 신경전으로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빌미로 퇴장을 당했다. 경기 막판 흥분한 최준용은 심판이 돈을 세는 제스처를 하는 등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 역시 퇴장을 당했다. 두 선수가 국제심판에게 찍혔다고 보는 이유다.
방열 전 회장은 “내가 농구협회 회장에서 물러난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두 선수가 국가대표로서 보여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두 선수를 뽑지 말라는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농구인 B는 “국가대표 엔트리 선발을 앞두고 경기력향상위원회에 ‘원로들이 이대성과 최준용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선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 반박했다. 방열 전 회장이 자의든 타의든 실제 선수선발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다.
‘한국선수가 FIBA 심판에게 찍혔다’는 내용을 두고 농구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농구인 C는 “FIBA는 프로페셔널한 조직이다. 해당심판이 당시 최준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순 있다. 그렇다고 심판들 전체가 담합해 다음 국제대회에서 한국에게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보복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판도 자신의 커리어가 달렸는데 그렇게 하겠는가? 한국경기에 어떤 심판이 배정될 지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반문했다.
농구인 D는 “설령 이대성과 최준용이 심판에게 찍혔더라도 기량이 있다면 안고 가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심판이 무서워 꼭 필요한 선수를 뽑지 않았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두 선수를 컨트롤하지 못한 것도 결국 추일승 감독의 책임”이라 지적했다.
지난해 5월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추일승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계약기간이 종료됐다. 당장 한국은 내년 2월부터 ‘아시아컵 2025’ 예선을 시작한다. 호주, 태국, 인도네시아와 A조에 속한 한국은 2월 22일 호주 원정경기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역대최악의 참사에 선장까지 잃은 한국은 내분으로 분열돼 망망대해에서 목적지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