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더 이상 '작은 정우영'이 아니다. 정우영(24, 슈투트가르트)이 혼자서 8골을 책임지며 금메달 사냥의 1등 공신으로 펄펄 날았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팀은 7일(이하 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치러 2-1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정우영과 조영욱의 골에 힘입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새 역사’를 쓴 황선홍호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한국의 2연속 금메달 기운을 이어받아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아시안 게임에서 3연속 우승한 팀은 없었다. 앞서 대만(1954-1958년), 미얀마(1966-1970년), 이란(1998-2002년)이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 2연패를 달성했지만 3연속 우승엔 실패했다.
시작은 좋지 못했다. 한국은 이른 시간 선제골을 내줬다. 전반 2분 왼쪽 측면에서 사토가 낮은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건네받은 시게미가 우치노에게 곧바로 패스, 문전에서 우치노가 오른발 슈팅으로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이 전반 27분 동점을 만들었다. 정우영의 머리가 빛났다. 백승호가 먼저 일본의 오른쪽 측면을 개인기로 흔들었다. 이후 황재원에게 공을 내줬고, 그대로 문전으로 크로스가 올라갔다. 이를 정우영이 상대와 공중볼 싸움에서 이기며 헤더 슈팅으로 연결, 공은 그대로 일본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은 후반 11분 역전을 일궈냈다. 황재원이 저돌적인 돌파로 공을 일본 박스로 몰고 들어왔다. 이후 왼쪽으로 짧은 패스를 건넸다. 정우영이 받아 슈팅을 날리고자 했지만 무게 중심을 살짝 잃어 앞에 있던 조영욱에게 공을 내줬다.
조영욱은 침착하게 수비 한 명을 개인기로 제친 뒤 낮고 빠른 슈팅으로 팀의 두 번째 골을 뽑아냈다. 경기는 그대로 한국의 1골 차 승리로 마무리됐다. 한국은 지난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결승에서 일본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또 한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 정우영이다. 그는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측면 공격수로 뛰었음에도 결승전 천금 동점골을 포함해 무려 8번이나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그는 황선홍호가 7경기에서 기록한 27골 중 8골을 책임지며 대회 득점왕까지 거머쥐었다.
7번을 달고 뛴 정우영은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1차전서부터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시동을 걸었다. 그는 득점 외에도 강력한 전방 압박과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한국 공격에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토너먼트에서 제대로 빛났다. 정우영은 키르기스스탄과 16강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렸고, 4강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선제골과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승에서도 귀중한 동점골을 뽑아내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왼발, 오른발, 머리를 가리지 않고 득점하는 정우영의 모습은 국가대표 7번 손흥민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정우영은 대회 최다 득점자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94 히로시마 대회 득점왕이었던 황선홍 감독 앞에서 득점왕 타이틀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가 득점왕에 오른 것은 1990년 서정원(4골), 1994년 황선홍(11골), 2018년 황의조(9골)에 이어 정우영이 4번째다.
이로써 정우영은 자기 힘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특례까지 손에 넣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는 이강인의 발끝에 가장 많은 시선이 모였지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다름 아닌 정우영이었다. 그는 이른바 '합법적 병역브로커'로 맹활약을 펼치며 동료들의 앞길에 귀중한 선물을 안겼다.
정우영 개인으로서도 걱정 없이 유럽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앞으로 병역 특례를 얻기 어려웠지만,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인 정우영은 더욱 편한 마음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를 누빌 예정이다. 정우영과 슈투트가르트 모두 간절히 바라던 결과다.
황선홍호의 시작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정우영. 그는 이제 연령별 대표팀이 아닌 성인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넓혀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2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그의 다재다능함은 클린스만호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정우영은 지난해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무대도 밟았다. 다만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34, 칼리즈)의 존재로 인해 '작우영', '작은 정우영'으로 불렸고,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못했다.
약 10달이 흐른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큰' 정우영은 대표팀에서 멀어졌고, '작은' 정우영은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이젠 항저우의 영웅 정우영이 '정우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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