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회장 정기환)가 경주마 도핑검사의 국제적 역량을 인정받으며 경마 공정성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 국내 유일 경주마 금지약물을 검사하는 기관인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가 지난 9월 14일부터 24일(현지시간)까지 홍콩에서 개최된 ‘제23회 국제경마화학자수의사대회(ICRAV)’에 참가했다.
국제경마화학자수의사대회는 전 세계의 경마화학자 및 수의사들이 한데 모여 수의학, 약학 및 도핑에 대한 최신정보를 교환하고 기술을 공유하는 장이다. 올해는 4개 분야에서 17개 세션에 걸쳐 도핑검사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의 곽영범 박사는 이번 대회에서 ‘홍삼섭취가 말 혈장내 푸로세마이드 약동학 및 이뇨 활성에 미치는 영향’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전 세계 경마화학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경주마 도핑검사는 올림픽의 도핑검사보다도 역사가 깊다. 올림픽 도핑검사는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처음 도입되었지만 경주마는 도핑검사는 이보다 57년이나 앞선다. 1900년대 초 경주마의 능력향상을 위해 아편과 같은 환각물질을 투여하는 등 약물을 통한 승부조작이 의심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당시 약물을 오남용한 말들은 경주가 끝나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벽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는 등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오스트리아의 프란켈 박사가 1911년 최초로 경주마를 대상으로 약물검사를 시작한 것이 경주마 도핑검사의 시작이었다.
1947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범한 국제경마화학자회(AORC)는 새로운 약물 정보와 검사기술을 공유하며 도핑검사기술의 체계적인 발전 및 국제공조를 위해 설립된 단체다. 현재 26개국 100여명의 화학자들이 연구와 검사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한국은 1991년부터 정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경주마 도핑검사가 도입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최근까지도 해외에서는 신약을 활용한 도핑이 발견되며 경마의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2020년 세계 최고 상금을 걸고 개최된 ‘제1회 사우디컵’에서 미국의 원정 경주마 ‘맥시멈 시큐리티’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초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는 듯 했다. 하지만 경주 후 진행된 도핑검사에서 신종 도핑 약물이 검출되며 우승이 취소된 바 있다.
2021년 5월 미국에서는 최고의 경마대회중 하나인 ‘켄터키더비’가 열렸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메디나 스피릿’에게서도 금지약물이 검출되며 실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스포츠계를 충격에 빠트린 ‘메디나 스피릿’은 6개월 후 ‘브리더스컵 클래식’ 대회에 출전해 한국마사회 소속 경주마 ‘닉스고’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한 달 만에 돌연사 했다. 부검을 통해서도 폐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약물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한국경마에서는 아직까지 고의적 도핑 사례가 발견되고 있지 않다. 한국은 출전하는 경주마에 대해 경주 전·후 최소 2차례에 걸친 도핑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검사하는 약물의 종류만도 약 800여종에 달한다. 한국마사회는 경주마 도핑테스트 수준을 시험하는 ‘국제경마화학자협회 숙련도시험’에서도 27년 연속 만점으로 합격하며 그 정교함을 인정받고 있다. 국제숙련도시험은 점점 더 교묘해지는 도핑수법에 대응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약물들과 검출 기법의 숙련도를 점검하는 고난도의 시험이다.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 관계자는 “점점 난이도를 더해가는 숙련도시험에 27년 연속 합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회의에서 매년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등 한국의 경주마 도핑검사 기술은 국제적인 역량을 갖추었다고 자부할 만한 수준이다”라며 “끊임없는 연구와 철저한 검사를 통해 23개국에서 함께 즐기는 한국경마의 공정성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