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밤 9시. ‘운명의 한판’이 펼쳐진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에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황선홍호’의 마지막 항해다. 하나 남은 암초인 ‘숙명의 맞수’ 일본을 제치고 희망봉에 ‘금빛 닻’을 내리며 항행(航行)을 마무리할지 이목을 모으는 최후의 일전이다.
황선홍호는 화룡점정의 열망을 불사른다. 결승전에서, 마지막 한 점을 훌륭하게 찍어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사로잡겠다는 야망에 가득 차 있다. 아시안 게임 최초 3연패(覇)를 디딤돌로 최다 등정 경신(5→6회)의 꿈을 이루겠다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울러 각급 대표팀 맞겨룸에서 이어지는 ‘연패 고리’를 끊고 전통의 강세를 되살리는 한편, 새로운 한-일전 양상의 첫걸음을 내딛겠다며 왕성한 전의를 불태운다.
마지막 한판에서, AG 3연패-최다 등정-일본전 연패 고리 차단 노려
한국 축구와 아시안 게임은 인연의 끈으로 엮여 있다. 대회 최다 우승이 입증한다. 1970 방콕 대회에서 버마(현 미얀마)와 함께 정상에 오른 이래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모두 다섯 번이나 금 고지를 정복한 한국이다. 물론 최다 등정이다. 이번 항저우 대회에서 뜻한 대로 우승하면 우리나라가 보유한 기록에서 한 걸음 더 올라서는 금자탑을 쌓는다. ‘아시아 맹주’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곧추세울 수 있다.
또 한 마리의 토끼는 아시안 게임 남자축구 사상 첫 3연패다. 2014 인천 대회(‘이광종호’)-2018 대회(‘김학범호’)에서 거푸 금빛 항해의 개가를 올린 한국 U-23대표팀이다. 지금까지 2연패를 이룬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현 차이니즈 타이베이)과 버마와 이란뿐이다. 대만은 1954 마닐라 대회와 1958 도쿄 대회에서, 버마는 1966 방콕 대회와 1970 대회에서, 이란은 1998 방콕 대회와 2002 부산 대회에서 각각 2회 연속 우승한 바 있다.
마지막 토끼는 각급 대표팀 연패 고리 절단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 A대표팀을 비롯해 U-23대표팀과 U-17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거푸 쓴잔을 들었다. 우위를 지킨 U-20대표팀을 제외하면 연패의 나락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표 참조). 통산 전적에서 강세를 보이며 한 수 아래로 볼 수밖에 없었던 발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된 요즘이다.
한 나라 축구를 대변하는 A대표팀마저 2연패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2021년 3월에 열린 친선 경기와 2022년 7월에 맞붙은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에서 거푸 0-3의 쓴맛을 봤다. 2019년 12월에 벌어진 역시 EAFF E-1 챔피언십 승리(1-0)가 마지막으로, 3년 10개월 동안 ‘무승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U-20대표팀은 3연승을 질주했다. 2016년 5월 수원 JS컵 U-19 국제 대회(1-0 승)부터 올 8월 2023 SBS컵 국제 대회(1-0승)까지 패배를 몰랐다. 9년 전인 2014년 10월에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패배(1-2 패)가 마지막이다.
그러나 이번 항저우 대회에선, 다른 모양새가 펼쳐지리라 자신하는 황선홍호다. 이 대회 준결승전까지 옮긴 발걸음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다. 전문가들도 한국의 승리를 내다본다. 2018 대회 결승전에서 일본과 자웅을 겨뤄 2-1로 개가를 올리며 금빛으로 인도네시아 하늘을 수놓았던 추억도 한국의 우승 낙관론에 힘을 실어 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막강의 공격력을 뽐내며 파죽지세의 6연승을 내달려 왔다. 그룹 스테이지(E) 3경기에서 16득점 무실점을, 녹아웃 스테이지 3경기에서 9득점 2실점을 각각 기록했다. 총 6경기 25득점 2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4.2득점 0.33실점의 공수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전력을 보였다. 9년 전, 한국의 5회 우승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자취를 남긴 ‘이광종호’가 7전 전승을 거두며 올린 13득점 무실점 전과를 훨씬 뛰어넘는 전적이다.
일본도 제법 위력 있는 공격력과 잘 짜인 수비력을 보이며 5연승했다. 그룹 스테이지(D) 2경기에서 4득점 1실점을, 녹아웃 스테이지 3경기에서 13득점 1실점을 각각 기록했다. 총 5경기 17득점 2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3.4득점 0.4실점의 전력을 나타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 준결승전을 치르며 정신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의 거친 플레이를 2-1로 잠재우며 전력을 재점검하고 아울러 정신 재무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황선홍호가 마지막 파고를 넘기고 세 마리 토끼를 획득하는 데엔, 또 하나의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출범(2021년 9월) 후 처음 맞이하는 희망봉이다. 그곳에 닿아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가를 소리 높이 부를 황선홍호의 그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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