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관중의 야유도 현격한 실력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팀은 1일 중국 항저우의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서 열린 중국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8강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6회 연속 대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우승에 한 발 더 다가선 것이다. 한국은 오는 4일 오후 9시 우즈베키스탄과 벌일 준결승에서 승리하면 오는 7일 대망의 결승전에서 홍콩-일본전 승자와 금메달을 놓고 맞붙게 된다.
경기 전 한국의 걱정 중 하나는 관중이었다. 홈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압박감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날 경기는 중국 2대 명절 중 하나인 국경절에 치러졌다.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고 "짜요" 응원을 앞세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중국 관중들은 경기 직전 국민의례 때부터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할 때 이곳저곳에서 야유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경기 상대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여주지 못한 대회 주최국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신 중국 국가가 연주되자 모든 관중들이 일어섰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하나 된 듯 국가를 합창했다. 경기 전까지 경기장은 한국 선수들이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기세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중국 관중들의 소음 같은 응원은 경기 시작 5분 정도까지 이어졌다. 홈 관중을 등에 업은 중국이 저돌적으로 한국 진영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경기가 진행되고 실력 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차츰 데시벨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전반 18분 홍현석의 환상적인 왼발 슈팅이 중국 골대 그물에 꽂히자 관중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응원 소리가 뚝 끊겼다. 마치 관중석에는 한국 선수들과 응원단만 있는 듯했다. 홍현석은 보란 듯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는 '쉿'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다.
전반 35분 송민규의 추가골까지 성공하자 애국가 도중 나오던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송민규는 귀 옆에 양손을 갖다 대며 관중석을 향해 '더 소리쳐 보라'라며 도발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백승호는 경기 후 "애국가가 나올 때 관중석에서 야유가 나왔다. 그런 부분에서 이 악물고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우리의 신경을) 더 돋구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도 경기장 안에서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더 즐겼다"고 강조했다.
홍현석 역시 "(침묵한걸) 조금 느꼈다. 살짝 도서관? 기분 진짜 최고로 좋았다"면서 "원래 프리킥을 잘 안 찬다. 그런데 갑자기 '이건 내가 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백)승호 형에게 말했다. 내 인생 득점 중 톱3 안에 든다"라고 웃어 보였다.
이날 골은 2개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기량 차는 현격했다. 2-0으로 앞선 전반 추가시간 백승호가 후방으로 골을 돌리는 과정에서 내준 역습 때 골대를 맞는 장면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중국은 내내 뒤로 물러나 더 이상 실점을 막는 데 급급했다. 일방적인 경기가 후반전 내내 지속되자 관중석에는 서서히 빈자리가 계속 늘기 시작했다. 좀처럼 자국팀의 경기력이 나아지지 않자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매체들도 한국과 중국의 실력 차를 인정했다. '북경청년보'는 경기 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남자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한국과 만나 여전히 패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매체는 "1999년생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이번 대표팀이 임무를 마쳤다. 경기 내용과 결과는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현실을 팬들에게 보여줬다"면서 "두 번째 골이 터진 뒤에 중국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정신적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반 내내 중국은 엄밀한 슈팅조차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신화통신' 역시 "중국은 최선을 다했지만 실력 차이가 확연해 0-로 패하며 아시안게임 여정을 마무리했다"고 했고 중국 포털 '소후닷컴'은 "중국은 6회 연속 아시안게임 4강 진출에 실패했다"면서 "중국이 아시안게임 준결승에 진출한 것은 1998년 대회 동메달이 마지막"이라고 돌아봤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