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득점사를 수놓은 시어러의 영명(英名) 뒤엔, 자칫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흔히 기록적 측면에서, 팬들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사상 으뜸가는 골잡이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의아해할 팬도 있겠다. EPL 통산 득점왕이라면서 왜 그러냐는 반문도 나올는지 모른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 체제 변환에 따라 자칫 일어나기 쉬운 착오다. 1888년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1부)으로 출범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는 1992년 EPL로 체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곧, 시어러는 EPL 통산 득점왕이긴 하나, 그대로 135년의 연륜이 쌓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 역대 으뜸의 득점왕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시어러는 역대 최고의 득점왕인가, 아닌가? 답은 “아니다”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 전체로 외연을 넓히면, 놀랍게도 시어러는 5위에 그친다. 당대 지구촌에서, 가장 인기를 끌며 뜨거운 각축이 펼쳐지는 EPL을 사랑하는 팬들에겐, 다소 충격적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은 올해 들어 세계 각국 프로리그 톱 디비전 득점자 순위를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나름 힘을 쏟은 회심의 이 각국 프로축구 골잡이 순위 시리즈 41회에서, IFFHS는 잉글랜드 역대 골잡이를 조명했다.
‘잉글랜드 편’에선, 지미 그리브스가 가장 윗자리에 앉았다.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15년간(1957~1971년·햇수 기준) 잉글리시 풋볼리그 1부를 누비며 엄청난 골을 터뜨렸다. 516경기에 모습을 나타내 357골을 뽑아내며 추격권 밖에서 여유 있게 ‘잉글랜드 프로축구 득점왕’에 등극했다. 2위에 자리한 스티브 블루머(314골)보다 37골이나 앞서는 당당한 선두다(표 참조).
그리브스는 블루머가 보유하던 타이틀을 55년 만에 빼앗았다. 1967-1968시즌까지 309골을 잡아냈던 그리브스는 1968-1969시즌 27골을 터뜨리며 336골로 블루머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리브스는 1969-1970시즌에 12골을, 1970-1971시즌에 9골을 각각 뽑아내며 모두 21골을 더해 통산 357골을 터뜨렸다.
그리브스는 첼시(1957-1958~1960-1961시즌)에서 124골을, 토트넘 홋스퍼(1961-1962~1969-1970시즌)에서 220골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1969-1970~1970-1971시즌)에서 13골을 각기 기록했다.
그리브스는 우리나라 팬에게도 낯익은 이름이다. 손흥민이 둥지를 틀고 있는 토트넘의 레전드로 사랑받는 골잡이기도 하다. 지금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해리 케인이 토트넘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할 당시, EPL 팬들 사이에서 회자하던 그리브스의 토트넘 통산 골 기록이었다. 그리브스가 갖고 있던 각종 대회 토트넘 통산 골 기록(268골)은 2021-2022시즌까지 맨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기록은 2022-2023시즌 케인(280골)에 의해 깨졌다.
딘은 ‘원 클럽 맨’이다. 에버턴에서만 풋볼리그 1부 마당을 밟으며 310골을 터뜨렸다. 이 시절(1924-1925~1937-1938시즌), 에버턴이 세컨드 디비전(2부)으로 강등돼 몸담았던 1930-1931시즌 39골을 뽑아내며 팀을 한 시즌 만에 퍼스트 디비전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1927-1928시즌에 맹위를 떨치며 터뜨린 60골은 지금까지도 1부리그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경기당 평균 0.86골(362경기-310골)은 역대 통산 득점 5걸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블랙번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시어러는 283골로 5위에 자리했다. EPL(260골)과 이전 풋볼리그 1부(23골) 기록을 묶은 수치다. 1994-1995시즌, 시어러는 득점왕(34골)에 오르며 블랙번을 EPL 정상으로 이끈 바 있다. 경기당 평균에선, 역대 통산 5걸 가운데 시어러가 0.51골(559경기-283골)로 가장 낮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