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서울 팬도 "안타깝네요" 한숨만...'축구 수도' 수원의 충격 몰락
OSEN 고성환 기자
발행 2023.09.28 07: 22

"안타까운 마음이 크네요."
'축구 수도' 수원 삼성이 이제는 라이벌 FC서울 팬에게도 동정을 받는 처지가 됐다.
수원 삼성은 지난 26일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고 플레잉 코치로 뛰던 염기훈에게 감독대행을 맡긴다고 발표했다. 수원은 "구단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고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사령탑 교체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야말로 '특단의 조치'다. 수원은 현재 리그 최하위로 추락하며 강등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5월 김병수 감독이 이병근 감독과 최성용 감독대행의 뒤를 이어 소방수로 부임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수원은 김병수 감독 체제 두 번째 경기였던 강원전 승리를 시작으로 5경기 무패(2승 3무)를 달리며 반등하는가 싶었으나 최근 연패에 빠지며 다시 12위가 됐다. 결국 김병수 감독은 어렵사리 수원 사령탑을 잡은 지 5개월 만에, 시즌 7경기를 남겨둔 중대한 기로에서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3' 수원 삼성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열렸다.경기 시작을 앞두고 수원 김병수 감독이 피치를 바라보고 있다. 2023.06.11 / dreamer@osen.co.kr
충격적인 소식에 수원 팬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팬들은 머리까지 삭발하고 나선 김병수 감독에게 위로를 전했고, 프런트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수원의 소셜 미디어 게시글에는 수원 팬분들만이 아니라 다른 K리그 팬들까지 모여들어 구단 행보를 지적했다.
특히 구단 레전드 염기훈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프런트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애꿎은 염기훈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 그는 플레잉 코치로 뛰고 있긴 하지만, 정식 지도자 경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강등이 코앞으로 다가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염기훈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게 맞느냔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팬들은 직접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직접 근조 화환을 보내고 직접 경기장을 찾아 걸개를 걸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등 행동에 나섰다. 구단 앞으로 배송된 근조 화환만 10개가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찾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팬들의 절절한 한(恨)으로 가득했다. 구단 팬샵 외관은 팬들이 붙인 메시지로 뒤덮여 있었다. 팬들은 포스트잇과 스케치북을 활용해 하고 싶은 말을 토해냈고, 다른 팬들이 추가할 수 있도록 포스트잇과 펜도 놓여 있었다. 대부분 프런트를 저격하는 문구 혹은 김병수 감독과 염기훈 감독대행을 향한 응원 메시지였다.
팬샵 옆에는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제상까지 차려져 있었다. 제기와 향, 과일은 물론이고 흰 국화 다발들, "우리의 청춘과 낭만을 짓밟지 마라"라고 적힌 유니폼, 머플러도 줄을 이었다. 대표 응원 문구인 "SUWON till I Die."에서 'till'과 'I'에 가위표가 그어진 "SUWON Die." 걸개 역시 눈길을 끌었다.
천천히 경기장 풍경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수원 팬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조금씩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몇몇 팬들은 우산을 쓰고 나타나 포스트잇에 진심을 눌러 담았다. 한 팬은 꽃다발과 함께 "레전드 고기방패 세우는 삽질 X런트"라는 근조 리본을 달고 가기도 했다. 
빅버드를 방문한 팬들은 분노와 서글픈 마음을 공유하려는지 핸드폰을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는 라이벌 서울 팬도 있었다. 자신을 서울 팬이라 밝힌 이성광 씨(33)는 "근처에 살고 있는데 수원 소식을 듣고 와보게 됐다. 이제 올 기회가 많이 없을 것 같다. 라이벌 관계인 데다가 집도 근처라서 구경하러 왔다"라며 "안타깝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K리그 최대 라이벌 관계인 수원과 서울이지만, 이 씨에게도 수원의 몰락은 충격이었다. 그는 "원정을 가도 가장 재밌는 경기가 수원과 슈퍼매치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씨는 "내가 봐도 문제가 커 보인다. 구단 차원에서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물론 선수나 감독 책임도 있겠지만, 모두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구단적으로 조치가 부족한 것 같다"라며 문제점을 진단했다.
무엇보다 모두가 인정하는 K리그 레전드 염기훈이 감독대행을 맡게 됐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씨는 "선수로서는 되게 잘하고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우리 팀도 똑같이 김진규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고 있긴 하지만...글쎄다.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닌 듯 보인다. 듣고 깜짝 놀랐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제 수원의 운명은 앞으로 7경기에서 결정된다. 인천, 포항과 2연전을 끝으로 파이널 라운드에 돌입한 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 염기훈 감독대행과 함께 치를 남은 경기에서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부로 추락하거나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드라마를 다시 한번 작성할 수도 있다. 과연 수원의 몰락엔 브레이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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