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태권도 -80kg 박우혁(삼성에스원태권도단)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종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우혁은 지난 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80kg 결승에서 스페인의 존 신타도 아르테체를 꺾고 우승을 차지 한 바 있다. 우리나라 취약 체급으로 여겨지는 '마의 –80kg급’에서 23년 만에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1999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선수권대회 장종오(현 용인대 교수) 이후 처음이다.
◇ 금빛 발차기로 ‘금메달’ 목에 걸고 아시아 제패
박우혁은 이번 AG 결승전에서 본인이 가진 기량을 뽐냈다. 다양한 기술 중에서도 정교한 상단 공격과 경기를 적극적으로 리드하며 상대 선수인 메란 바르코다리(이란)와 살레흐 엘샤라바티(요르단)를 압박했다. AG 출전을 앞두고 회전 공격과 밀어차기 기술 등 경기 집중력 향상을 위한 훈련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기는 상황에서도 경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한 박우혁의 끈기와 근성이 발휘된 결과다. 박우혁은 이번 우승의 기쁨을 재작년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누지 못해 연신 아쉬워했다.
강원도 원주 본가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는 “어릴 적부터 쌈짓돈을 꺼내 용돈을 주셨던 할머니는 힘든 국가대표 선수 생활에서도 가장 큰 응원을 보내주신 분”이라며 “제가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가고 싶다던 할머니가 이제 하늘나라에서 결승전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전했다.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박우혁은 동료 선수들에게 장난기 많고 긍정적인 선수로 통한다. 이대현과 함께 유튜브 채널에 일상 브이 로그를 공유하고, TV예능을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도 여느 20대 청년과 다를 바 없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사뭇 달랐다. 어릴 적 ‘아빠가 없으면 네가 우리집 가장’이라는 아버지 말에 그의 어깨에는 K-장남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실렸다. 최근 실업팀 입단으로 부담이 더욱 컸을 터.
특히 이번 금메달을 획득해 군 면제 혜택을 받게 된 박우혁은 경기 전 오직 AG 결과에만 집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모습 뒤에는 때론 엄했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어준 친구 같은 아버지가 있었다.
◇엄한 직업군인 아버지 이제 ‘주유소 같은 존재’
2000년, 4월 29일 1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직업군인(공군)이었던 아버지의 발령으로 경기도 송탄을 거쳐 서울, 현재 강원도 원주에서 거주 중이다. ‘딸바보’ 아버지는 누나에게 밥을 손수 차려줄 정도로 자상했지만 유독 아들에게만 엄했다. 아들이 집 안의 장남으로 곧고 바르게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어느 날 박우혁은 유치원 체육대회에서 아버지의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기가 살았다고 회상했다. 어릴 적 운동(축구)을 했던 박우혁의 아버지는 아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운동이 힘들고 아들이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우혁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일찌감치 그의 기량을 알아본 태권도장 관장이 선수를 권유했고 삼고초려 끝에 ‘초등학교 3학년’까지 조건부 허락을 한 것이 고등학교 3학년까지 태권도 선수로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초등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 경기라면 열일 제쳐 두고 참석했다. 아버지는 해외 출전에도 동행하며 아들을 응원했다. 직업 군인 시절, 주말에만 보던 어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가장으로서 아들의 곁을 늘 지킨 것이다. 지난 달 명예퇴직을 한 아버지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참석해 아들에게 힘을 실었다. 그는 아버지를 ‘주유소 같은 존재’라 말했다. 마치 동력을 잃은 자동차가 주유소에서 충전하듯이 운동을 하며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아버지의 격려와 채찍질 덕분에 사춘기도 별 탈 없이 지나갔고 운동에도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 강인하고 따뜻한 어머니 ‘지금의 저를 만든 사람’
한국에 ‘골프대디’가 있다면 강원도 원주에는 박우혁의 ‘태권도맘’이 있다. 전업주부로 소소한 부업을 했던 어머니는 박우혁의 태권도장 라이딩을 위해 두려움을 감수하고 운전면허를 땄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하교 후 훈련장에 데려다 주는 것을 하루도 빠짐없이 한 것. 아들의 체력 보충을 위해 매일 사골국도 한 찜통 끓였다. 박우혁의 집에는 매일 꼬릿한 비린 내가 났고 어머니의 이런 정성 덕분에 사골국은 밖에서 거의 사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라고 전했다. 인터뷰 내내 ‘나도 나 같은 아들을 낳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며 구김살 없는 모습이 영판 철없는 소년 같지만 “지금의 박우혁을 만든 것은 어머니의 희생이었다”며 “엄마와 저는 얼굴도 매우 닮았는데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나 밝고 긍정적인 마음도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도 가족들은 그를 아낌없이 지지했다. 특히 어머니는 “다치지만 말아라”고 했지만 평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박우혁은 마음은 우승을 향하고 있었다.
◇ 2024 파리올림픽 -80kg ‘金’ 노릴 계획
국제 대회는 선수들에게 늘 떨리는 무대다. 특히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경우 당초 계획보다 1년 미뤄졌고,‘국기’인 태권도는 2년전 도쿄올림픽에서‘노골드’수모를 겪어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박우혁은 이번 경기를 위해 상대를 분석, 어떻게 점수를 뽑을 것인지 실점했다면 역점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이전 경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담도 컸다. 타박상 등의 잔부상도 있었기에 오늘 목에 건 금메달이 더욱 값지다. 박우혁은 평소 아버지의 조언처럼 부담감을 내려 두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또 경기 전날 마스크 팩을 해야 이기는 본인의 징크스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아시안 게임이 끝나자마자 그랑프리 경기를 앞두고 있다. 또 2024년 파리올림픽에 대해서는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것을 준비하면서 다시 느꼈고 나가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박우혁이 내년 파리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우리나라가 한 번도 출전조차 하지 못한 체급인 남자 -80kg 체급에 최초로 출전하는 셈이다. 그가 자신의 콤플렉스라 여기는 라지 사이즈의 헤드기어(-80kg 체급 선수는 대부분 스몰, 미디움 사이즈의 헤드기어를 쓴다는 것)를 내년 프랑스 파리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