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를 대표하던 ‘영혼의 짝꿍’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듯싶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환상의 듀오’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면서다. 2023-2024시즌, 완벽하게 하나 된 호흡을 이뤄 멋들어진 이중주를 빚어내며 토트넘의 가공할 공격 자원으로 떠오른 손흥민(31)-제임스 매디슨(26) 조합이다.
2022-2023시즌까지만 하더라도, 토트넘의 ‘명물’은 단연 손흥민-해리 케인(30·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럼직했다. 둘이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한마음 한뜻으로 펼치는 합작 플레이는 EPL 무대를 눈부시게 수놓았다. 물론, 다른 팀엔 ‘경계 0순위’로서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2016-2017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둘이 이룬 합작 득점(47골)이 단연 EPL 최고 기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데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는 파괴력이었다.
2023-2024시즌 개막을 앞두고, 케인은 “우승에 맺힌 한을 씻고 싶다”라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고 명가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자연스레, 손흥민-케인 조합은 깨졌다.
토트넘 팬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움과 함께 걱정의 정도는 커져만 갔다. ‘과연 와해한 손흥민-케인 듀오를 대체할 만한 새 조합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었다. 어쩌면 이 같은 회의적 시각은 당연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우(杞憂)였다. 이번 시즌 막이 오르기 전, 토트넘 지휘봉을 잡은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내놓은 새로운 상품인 ‘손흥민-매디슨’ 조합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하며 매력적이면서도 위력적인 콤비가 등장했음을 힘있게 외치고 있다.
6경기 만에 합작품 2회 빚어낸 기세, EPL 화두로 떠올라
지난 24일(현지 일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EPL 제6라운드 토트넘-아스널전(2-2)은 혜성같이 나타난 손흥민-매디슨 듀오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췄음을 엿볼 수 있었던 한판이었다. 110년에 걸쳐 라이벌 의식을 키워 온 두 팀이 맞붙은 ‘북런던 더비’에서, ‘신상품 듀오’는 손흥민-케인 조합을 능가할 가능성을 보였다. 제6라운드로 벌어진 10경기 가운데 압권이라고 할 만한, 마력(魔力)이 깃든 골 작품을 잇달아 창출했다.
두 차례씩이나 빚어진 명장면이었다. 아스널 쪽으로 형세가 기울면, 손흥민-메디슨 듀오는 곧바로 균형추를 되돌리는 합작골을 터뜨렸다. 홈그라운드의 아스널 팬들이 기쁨(전반 26분·후반 9분)을 채 음미하고 만끽하기도 전에, 뽑아낸 두 차례 동점골(전반 42분·후반 10분)이었다.
이 한판은 토트넘에 무척 뜻깊은 일전으로 기억될 듯싶다. 지난 시즌 8위의 치욕을 씻어 내려는 토트넘에 장밋빛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이 엿보인 한판이기 때문이다. 물론, 손흥민-매디슨 듀오 등장이 연출한 데서 빚어진 낙관적 시각이다. 지금 4위(4승 2무)를 달리는 토트넘은 한껏 기세를 떨치는 형세다.
듀오는 각 개인으로서도 발군의 솜씨를 뽐내고 있다. 이번 시즌 평균 평점에서도, 팀 내 1·2위에 자리한 듀오다. 매디슨이 7.92점으로 1위에, 손흥민이 7.48점으로 2위(이상 후스코어드닷컴 기준)에 각각 올라 있다. 팀 내 공격 공헌도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매디슨이 1위(2골 4어시스트)고, 손흥민이 2위(5골)다.
EPL 전체로 외연을 확장해도, 둘의 기세는 놀랍다. 득점 레이스에서, 2위 손흥민은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8골)을 세 골 차로 뒤쫓는다. 어시시트 경주에서, 매디슨은 당당 선두에 나섰다. 페드루 네투(울버햄프턴 원더러스)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함께 맨 앞을 달리고 있다.
손흥민-매디슨 듀오가 이번 시즌 EPL에 회자할 화두가 되리라는 전망은 꿈이 아닌 현실에 가깝다. 이 맥락에서, 지난 6월 30일은 의미 있는 날로 아로새겨질 듯싶다. 매디슨이 토트넘과 계약하고 새 운명 개척에 나선 날이다. 이튿날, 매디슨은 레스터 시티에서 토트넘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리고 이번 시즌 6경기만에, 손흥민과 이미 두 번씩이나 합작품을 빚어냈다.
2023-2024시즌이 막을 내린 뒤, 손흥민-매디슨 듀오가 ‘영혼의 짝꿍’이란 애칭을 얻을 그 날이 기다려진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