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수장 위르겐 클린스만(59) 감독이 다시 출국했다. 아무리 개성이 강한 외국인 감독이라 하더라도 이렇듯 대놓고 한국 축구와 팬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국했다. 대표팀을 이끌고 유럽 원정에 나섰던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4일 귀국했고 K리그1 두 경기를 지켜 본 후 다시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
부임 7개월이 넘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제 한국에서 체류한 기간이 73일에 불과하다. 취임 기자회견 때 "한국 대표팀 감독이니까 당연히 한국에 거주할 것"이라며 서울에 집까지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약속은 보기 좋게 깨졌다.
오히려 유럽 원정 때 한국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게 한국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직접 언급한 국내 상주 약속을 어긴 것도 논란이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불성실한 근무 태도와 한국 축구는 물론 팬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문제가 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본업인 한국 대표팀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해외 미디어와 인터뷰, 유럽축구연맹(UEFA) 자문위원, 개인사업 등의 부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최근 K리그 관전도 '억지춘향'이었다. 이미 클린스만 감독은 귀국 인터뷰에서 "여러분들이 오라고 해서 들어왔다"면서 취재진들을 비웃듯 던진 농담에서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도 "계속 왔다갔다 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해외 근무에 당당한 모습이었고 악화된 국내 여론에 대해서는 "자꾸 부정적인 여론이나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면 팀이 흔들린다"며 오히려 팬들을 질타하기까지 했다.
유럽 원정 때 가졌던 인터뷰에서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모든 K리그 경기를 챙기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K리그 감독들이 이미 국내 선수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할 일이 없는 서울에 머물 바에 런던이나 김민재가 있는 뮌헨에 가는 편이 낫다"고 말한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언론과 팬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만 그런 방식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방식대로 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유럽파 점검을 이유로 해외 근무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이다. 하지만 부상이 없지 않는 이상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튼), 이재성(마인츠) 등 해외파를 뽑지 않을 것인가. 더구나 9월 A매치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굳이 해외파를 점검할 필요가 없고 10월 A매치 일정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쯤 되면 클린스만 감독이 대한축구협회(KFA)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그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이고 합리적인 계약을 맺었다면 분명 '한국에 얼마나 상주할 것인지', '겸업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등을 명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지금까지 말하고 행동하는 무소불위 정황을 보고 있자면 이런 내용이 계약서에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한축구협회가 이토록 손놓고 무방비로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자르는 "클린스만 감독과 그의 사단들이 (협회와) 계약했을 때는 분명 뒷배경이 있을 것이다. (협회도) 이미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면서 "의아한 부분은 있다"고 밝혔다.
감독 경험을 지닌 이탈리아 레전드 잔루카 잠브로타(46)는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은 다르다. 분명 그렇게 행동한다면 계약 조건에 언급이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까지 SPAL 사령탑을 맡기도 했던 마시모 오도(47) 역시 "그런 일이 감독 한사람에게 책임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가대표팀 전체가 짊어지고 다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 클린스만 감독의 행동이 결국 대한축구협회와 계약 내용에 따른 것이며 서로 소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만약 정말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과 맺은 계약 내용에 그렇게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야 말로 '호구' 소리를 피할 길이 없을 전망이다. 클린스만 감독의 상식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이 개성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계약의 허점 때문에 견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면 또 다른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