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36·아르헨티나)가 밟아 가는 길은 끝이 없는가 보다. 이제 발걸음을 멈출 법도 하건만, 앞길을 개척하며 내딛는 발길에선 지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욱 힘이 실린 당당한 행보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창출하며 세계 축구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다. 혁혁히 빛나는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임에 틀림없는 존재인 메시다.
메시가 또 하나 큰 족적을 남겼다. 아무도 밟지 못한 ‘처녀지’에 가장 먼저 들어서며 이정표를 세웠다.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최다 대회(이하 예선 포함) 득점의 신기원을 열었다. 가장 많은 여섯 번의 월드컵에서 골을 터뜨린 ‘최초의 사나이’로 영명(英名)을 드높였다.
메시는 ‘운명의 맞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포르투갈)에 한 걸음 앞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한결 진한 감격을 누릴 수 있을 듯싶다. 자신과 더불어 ‘신계의 사나이’로 불리며 천하를 양분하던 호날두는 아직 다섯 번 월드컵에서 득점포를 가동한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메시, ‘운명의 맞수’ 호날두를 한 대회(6-5) 차로 앞서
메시는 오랫동안 월드컵에 맺힌 통한에 시달려 왔다. 2006 독일 대회에서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이래 2018 러시아 대회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의 꿈을 이루지 못한 데서 비롯한 분한(憤恨)이었다. 2022 카타르 대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맺히고 맺혔던 한을 풀 수 있었다. 4전5기 끝에 정상을 밟으며 조국에 36년 만에 FIFA컵을 안겼다.
그토록 바라던 우승의 염원을 이뤘기에, 메시의 모습은 2026 북중미 3개국(미국·캐나다·멕시코) 월드컵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메시는 월드컵 뒤안길로 사라짐을 거부했다. 지난 7일(이하 현지 일자) 막을 올린 2026 월드컵 CONMEBOL(남미축구연맹) 예선에서, ‘라 알비셀레스테(La Albiceleste: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의 여전한 에이스로서 맹위를 떨쳤다.
메시는 역시 ‘축구 신(神)’이었다. 에콰도르와 맞붙은 서전에서, 후반 33분 환상적인 프리킥 결승골(1-0 승)을 터뜨리는 변함없는 골 감각을 뽐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인터 마이애미 CF로 둥지를 옮김으로써 새로운 활동 무대가 된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를 강타했던 가공할 득점력은 자취를 감출 줄 몰랐다.
에콰도르전 결승 득점은 기념비적 한 골로 자리매김했다. 1930년에 발원해 93년간 도도한 흐름을 이어 온 월드컵에서, 최다·최초의 새 역사를 연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란히 최다 대회 득점 반열에 올라 있던, 호날두를 포함한 다른 세 명의 골잡이를 제치고 가장 먼저 등정에 성공한, 역사적으로 뜻깊은 한 골이었다.
지금까지, 메시는 다섯 번의 월드컵 무대에서 줄기차게 득점포를 가동했다. 2006 독일 대회 조별 라운드(C) 세르비아-몬테네그로(당시)전(6-0 승)에서, 데뷔 골을 터뜨린 이래 줄곧 예선과 본선 마당을 누비며 ‘골바람’을 일으켜 왔다(표 참조). 그 정점은 2022 카타르 대회였다. 예선과 본선에서 각각 7골씩 모두 14골을 뽑아냈다. 특히 본선 녹아웃 스테이지 4경기에서 5골을 작렬하며 아르헨티나를 정상으로 이끈 맹활약상은 압권이었다. 메시는 2014 브라질 대회에서도 14골을 잡아낸 바 있었다. 그렇긴 해도 그때엔, 예선 10골에 비해 본선 4골에 그쳐 균형감이 떨어진 듯한 골 사냥이었다.
그리고 이 한 골은 메시를 월드컵 남미 예선 최다 득점 반열에 올려놓았다. 29골로, 한 걸음 앞서 달리던 동갑내기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한, 월드컵 남미 예선 역사상 최다 선제골 기록을 경신했다. 메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종전 기록(13회)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14회). 그 뒤는 카를로스 루이스(44·과테말라·12회)다.
메시에 비해 노쇠한 기미가 뚜렷한 호날두는 세월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성싶다. UEFA(유럽축구연맹) 월드컵 예선이 내년 3월에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월’이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당장 추격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없는 호날두로선 남은 5개월여가 초조할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론, 메시와 호날두가 벌이는 맞수의 대결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내면적으론, 저울추가 시나브로 메시에게로 기울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요즘의 흐름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