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59) 감독이 팬들로부터 점점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8일(한국시간)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웨일스와 A매치 평가전을 치러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이로써 클린스만호는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3무 2패를 기록하게 됐다. 5경기째 첫 승 사냥에 실패한 것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외국인 사령탑 중 이런 성적은 처음이다.
이날 경기는 한국 대표팀이 실로 오랜 만에 갖는 유럽 원정이었다. 신태용 감독 시절이던 북아일랜드, 폴란드를 상대했던 2018년 3월 이후 5년 6개월 만이다.
상대 웨일스가 만만치 않은 팀이지만 한국이 이길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졌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8위인데 반해 웨일스는 35위로 아래였다.
한국은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빠졌다지만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조규성(미트윌란),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재성(마인츠), 홍현석(헨트), 황희찬(울버햄튼), 오현규(셀틱) 등 유럽파들을 대부분 소집했다.
특히 공격진들의 컨디션은 최고 상태였다. 손흥민은 번리와 프리미어리그 경기서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황희찬은 크리스탈 팰리스전서 시즌 2호골을 터뜨렸다. 홍현석도 클럽 브뤼헤전서 멀티골을 넣었고 조규성도 도움을 추가, 공격 포인트를 생산했다.
상대적으로 웨일스는 감독부터 한국전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롭 페이지 웨일스 감독은 "솔직히 나는 (한국과 친선전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부상자가 많다"고 밝힌 것이다.
웨일스는 오는 12일 라트비아와 유로 예선 조별리그를 앞두고 있다. 터키, 아르메니아, 크로아티아, 라트비아가 속해 있는 D조에서 4위에 머물러 있는 웨일스인 만큼 한국전에 전력을 쏟아붓고 싶어하지 않았다.
쉽진 않겠지만 클린스만호의 첫 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적어도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 후 첫 기자회견 때 밝힌 화끈한 '공격 축구'가 어떤 모습인지 윤곽이 드러날 수 있는 좋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기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 온갖 비판을 감수하고 다져놓았던 후방 빌드업이 실종됐다. 중원은 보이지 않았고 롱볼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모습이었다. 웨일스 문전을 전혀 위협하지 못했다. 뭔가 벤치의 주문이 필요하던 시점.
마침 전반 25분 쿨링 브레이크가 주어졌다. 선수들이 무더운 열기를 식히고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시간이다. 전반 초반 보여준 문제점을 어느 정도 수정할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한다.
하지만 TV 화면에 비친 클린스만 감독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선수들이 들어올 때부터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선수들이 다 모였지만 그저 입가를 닦거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그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바로 앞에는 '주장' 손흥민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일일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손흥민에게 전달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물론 쿨링 브레이크 때 감독이 반드시 선수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지시를 내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전반 초반 분위기가 잘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카메라에 비친 20여초 동안 방관하듯 서 있는 클린스만 감독의 모습에 팬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이런 모습을 본 팬들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쿨링 브레이크 때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면 반칙인가", "선수들 물 마시는 거 구경하면서 '물멍' 때리는 건가", "내가 그동안 봐왔던 쿨링 브레이크와 달리 너무 평온하다", "정말 전술이 없는 건 아닐까" 등 비아냥 섞인 비판의 말을 내놓았다.
이렇듯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하락한 이유는 그동안 지적됐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라 불리는 클린스만 감독이지만 지도자로서 평가는 바닥이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세세한 전술이 없는 매니저형 감독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독일 대표팀 전설 필립 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 클린스만에 대해 "우리는 사실상 클린스만 밑에서 체력 단련을 했을 뿐"이라고 저격하기도 했다.
선임 당시 대한축구협회에 가해졌던 비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벤투 감독이 세워 놓은 토대를 이어갈 수 있는 감독 유형이 적어도 클린스만 감독은 아니라는 평가였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이 결국은 대한축구협회로 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경기 쿨링 브레이크를 통해 클린스만 감독의 신뢰는 더욱 하락했다. 1분 정도의 길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워커홀릭'이라 표현했던 클린스만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쿨링 브레이크 때를 이용해 선수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열정 넘치는 감독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남일 처럼 방관하는 모습은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