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호 '첫승'은 이번에도 불발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8일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웨일스와 평가전을 치러 0-0 무승부를 거뒀다.
지난 3월 부임 이후 클린스만 감독은 웨일스전 포함 5번의 A매치를 치렀지만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3월・6월 A매치 4경기에서 2무 2패를 기록하는 데 이어 이날 1무를 추가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4-4-2 전술을 가동했다. 손흥민, 조규성, 이재성, 박용우, 황인범, 홍현석, 이기제,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 김승규(골키퍼)가 선발로 나섰다.
웨일스는 4-3-4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네이선 브로드헤드, 조던 제임스, 브레넌 존슨, 해리 윌슨, 이선 암파두, 코너 로버츠, 조 로든, 크리스 메팜, 벤 데이비스, 네코 윌리엄스, 대니 워드(골키퍼)가 선발 출격했다.
양 팀은 초반 탐색전을 펼쳤다.
전반 13분 웨일스가 먼저 찬스를 잡았다. 중앙에서 어느새 한국 문전으로 공을 투입, 윌슨이 수비 두 명 사이로 공을 받아 낸 뒤 골키퍼 김승규 바로 앞에서 슈팅을 날렸다. 슈퍼세이브에 막히며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웨일스의 간결한 패스 3번에 한국 수비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국은 전반 중반이 넘도록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했다.
웨일스는 계속 선제골 기회를 엿봤다. 전반 29분 패스 한 번으로 한국 수비 라인이 뚫렸다. 뒤에서 들어오는 패스를 존슨이 쉽게 낚아챘다. 이후 박스 안 왼쪽에서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지만, 이는 정승현이 태클로 막았다.
전반 36분 한국이 오랜만에 날카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기제가 왼쪽 측면에서 ‘강점’ 정확한 왼발 크로스를 올렸다. 그러나 공은 주먹 하나 차이로 최전방 공격수 조규성 앞으로 지나갔다.
‘캡틴’ 손흥민이 직접 나섰다. 전반 39분 그는 웨일스의 왼쪽 측면을 개인기로 한 번 크게 흔든 뒤 박스 밖 왼쪽 모서리 근처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날렸다. 이는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전반 42분 김민재와 손흥민이 합을 맞췄다. 왼쪽 측면에서 김민재가 문전으로 쇄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 손흥민을 보고 '택배 크로스'를 올렸다. 손흥민의 공을 보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좋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오프사이드에 걸렸다.
전반전은 0-0으로 마무리됐다.
웨일스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존슨과 암파두를 빼고 키퍼 무어와 모렐을 투입시켰다.
후반 8분 한국이 웨일스의 실수를 기회로 만들었다. 조규성이 상대 진영에서 나온 잘못된 백패스를 낚아채 문전으로 빠르게 공을 몰고 들어갔다. 그러나 순식간에 달라붙은 수비 2명을 뚫진 못했다. 코너킥을 만들어냈지만 위협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이 웨일스의 허를 찔렀다. 후반 11분 손흥민이 박스 밖에서 회심의 슈팅을 때렸다. 그러나 공은 야속하게도 골대 위로 향했다.
웨일스와 한국이 같은 시간에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반 15분 웨일스는 윌슨과 제임스를 빼고 아론 램지와 조시 시한을 투입했다. 한국은 황인범과 홍현석 대신 이순민과 황희찬을 그라운드로 내보냈다.
웨일스가 골을 노렸다. 후반 18분 무어가 한국의 오른쪽 측면을 헤집어놓은 메팝의 크로스를 헤더 슈팅으로 연결했다. 이는 골대를 때렸다. 한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반 28분 한국과 웨일스는 한 번 더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 웨일스는 브로드헤드 대신 브룩스를 한국은 조규성 대신 황의조를 내보냈다. 후반 39분 한국은 이재성, 박용우를 빼고, 양현준과 이동경을 투입시켰다.
경기의 주도권은 여전히 웨일스의 것이었다.
한국은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짰지만 '골'은 없었다. 후반 43분 손흥민의 움직임이 오프사이드에 걸렸다. 경기는 0-0으로 마무리됐다.
비록 승리는 없었지만 손흥민은 자신이 왜 ‘주장’인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전후반 한국의 번뜩임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한국은 웨일스가 유효 슈팅 4개를 기록할 동안 단 1개 만을 기록했는데, 손흥민의 발끝에서 나왔다.
앞서 7일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손흥민은 웨일스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과 토트넘 주장 완장을 단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자 특권"이라며 "주장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경기장 안팎에서 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록 한국의 승리는 없었지만 손흥민은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기초군사훈련 소화로 지난 6월 A매치에 함께하지 못했던 ‘뮌헨 수비’ 김민재는 이날 대표팀 복귀전을 치러 자신이 왜 세계적인 수비수인지 입증했다. 전날(7일) 발롱도르 최종 후보 30인에 든 김민재다.
이날 김민재는 웨일스의 장신 공격수 무어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특히 강한 몸싸움으로 치고 들어올 때는 어깨를 먼저 넣어 재치 있게 공을 빼내기도 했다.
위협적인 볼 흐름은 김민재 발끝에서 시작됐다. 상대 수비가 한쪽으로 몰리거나 라인을 올릴 때마다 그는 과감한 공간 패스를 시도했다. 상대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확한 패스와 단단한 수비로 한국의 후방을 책임졌다.
또 김민재는 수비뿐만 아니라 전방으로 날카로운 볼을 배달하며 공격적인 능력도 뽐냈다. 전방에서 마무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중원이 붕괴된 상황에서 김민재의 패스는 단비 같았다.
공수에서 손흥민과 김민재가 분전했지만 무승부를 거둔 탓에 클린스만 감독의 위기론은 커지고 있다.
‘재택근무 논란’을 자초했던 클린스만 감독은 이날 승리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그러나 무승부에 그치면서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위기론이 힘을 받게 만들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6월 A매치 기간 직후 한 달간 해외 휴가를 떠나면서 팬들의 비난을 자초했다. 7월 1일에 자신의 생일과 자선 행사 참석 등을 이유로 또 해외로 출국, 이달 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조 추첨식까지 참석한 그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카디프로 건너갔다.
국내 업무는 사실상 차두리 코치와 이젠 코치직을 내려놓은 마이클 김 코치가 떠맡았었다. K리그 선수들이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선 클린스만 감독이 아닌 이 두 명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때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 상주를 약속했기에 그의 ‘재택근무'는 최근 몇 달간 꾸준히 '논란'이 됐다. 부임 후 5개월 동안 그가 실제 한국에 머문 시간은 70일이 되지 않는다. '첫승'도 없었으니 논란이 가중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사실상 ‘1.5군’이던 웨일스에게도 비기며 클린스만 감독은 피할 수 없는 위기론에 봉착했다.
웨일스는 한국전에 최상의 전력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후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12일 웨일스는 라트비아와 유로 예선 조별리그 원정경기를 치른다. 조 4위로 내려앉아 있는 웨일스는 라트비아전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에 롭 페이지 웨일스 감독은 한국전 사전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친선전을 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그런 그가 한국전에 총력전을 펼칠 리 만무했다.
힘을 뺀 웨일스를 상대로 비긴 한국, 그리고 팀을 지휘하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튼), 이재성(마인츠), 조규성(미트윌란) 등 유럽파들을 대거 사용했지만 빈손으로 경기를 마쳤다.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승리 근처에도 못간 클린스만 감독이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