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출신 미국선수들이 FIBA 국제농구 룰에 당황하고 있다.
스티브 커 감독이 지휘하는 미국남자농구대표팀은 5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8강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를 100-63으로 이겼다. 미국은 독일 대 라트비아전의 승자와 4강에서 만난다.
미국은 3일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서 리투아니아에 고전 끝에 104-110으로 무릎을 꿇었다.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1쿼터 초반 이후 시종일관 끌려갔다. 후반전 점수를 만회한 미국은 리투아니아의 신들린 3점슛(14/25, 56%)을 막지 못했다. 앤서니 에드워즈가 혼자 35점을 올렸지만 무리였다. 미국의 팀 디펜스는 심각하게 뚫렸다.
이틀 만에 치른 이탈리아전은 전혀 양상이 달랐다. 충격패가 약이 됐다. 1쿼터부터 24-14로 점수차를 벌린 미국은 3쿼터 중반에 이미 미국이 66-36으로 30점을 달아나 승부를 결정지었다.
2쿼터 36.7초를 남기고 오스틴 리브스의 팁인 덩크슛이 터지자 2만명이 모인 관중석이 폭발했다. 최고 인기선수의 멋진 플레이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미국인지 필리핀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팀에게 일방적인 응원이었다.
마이칼 브릿지스는 3쿼터 초반 3점슛을 넣고 이탈리아 벤치를 향해 도발 세리머니를 했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브릿지스는 이탈리아의 공을 빼앗아 속공을 뛰다 넘어지자 파울을 준 심판을 다시 쳐다봤다. 그만큼 미국은 여유가 넘쳤다.
3쿼터 후반 브랜든 잉그램이 ‘인 유어 페이스’ 덩크슛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센테 니콜로 멜리가 잉그램에게 안면을 얻어맞고 드러누웠다. 필리핀 관중들은 부상자에 상관없이 미국의 멋진 플레이에 열광했다. 잉그램의 ‘언스포츠맨 라이크 파울’이 선언되자 야유까지 나왔다. 그만큼 필리핀은 철저하게 미국 편이었다.
3쿼터 종료와 동시에 할리버튼이 다리 사이로 빼서 올린 공을 반케로가 투핸드 앨리웁 덩크슛으로 연결했다.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관중들은 미국의 묘기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이미 치열한 승부보다는 미국팀 쇼케이스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승부는 미국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있다. 미국은 아직 FIBA룰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브릿지스는 국제농구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트래블링’을 꼽았다. FIBA의 기준이 훨씬 엄격해서 미국선수들이 자주 지적을 당하고 있다. 같은 NBA선수라도 유럽선수들은 겪지 않는 문제다.
브릿지스는 “트래블링 룰이 가장 힘들다. 우리가 적응해야 한다. 오늘도 공을 잡자마자 바로 불어서 당황했다”고 고백했다.
스티브 커 감독은 “트래블링은 NBA랑 정말 다르다. NBA에서 마이칼이 3점슛을 넣고 벤치를 쳐다보면 그냥 넘어가지만 FIBA에서는 테크니컬 파울을 준다. 오늘 잉그램의 덩크도 언스포츠맨 라이크 파울을 받았다. 우리 선수들도 차이점을 존중하고 적응하려 한다”고 밝혔다.
점수차가 많이 벌어진 이탈리아전에서는 미국의 FIBA룰 부적응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4강이나 결승전 박빙의 상황에서 트래블링으로 결정적 턴오버를 범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천하의 코비 브라이언트나 르브론 제임스 역시 FIBA룰에 적응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고전했다.
커 감독은 수시로 심판과 소통하며 NBA룰과의 차이점에 대해 물어봤다. 커는 “우리는 유럽농구를 존경한다. 미국농구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FIBA는 NBA와 다른 경기다. 선수들과 처음 훈련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그 차이점을 존중하라고 가르쳤다”고 밝혔다.
한국농구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 한국프로농구는 기본적으로 FIBA룰을 따르지만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 선수들이 룰의 차이로 고전하는 경향이 있다. FIBA에서 국내리그보다 트래블링을 훨씬 엄격하게 분다. 선수들이 일명 ‘코리안 스텝’으로 불리는 잘못된 습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FIBA농구는 몸싸움을 굉장히 장려하는 분위기다. 웬만한 골밑접촉에는 파울을 불지 않는다. 한국선수들이 의도적으로 파울을 얻으려다 넘어졌을 때 심판만 쳐다보는 이유다. 그런 소프트한 자세로는 국제무대에서 이길 수 없다. 한국도 박경진 심판이 이번 농구월드컵에 참여하며 국제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국내리그도 그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