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팀 출전이 불발된 농구월드컵에도 한국의 깊은 인연은 있었다.
이집트농구대표팀은 2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조별리그 N조 예선에서 뉴질랜드에 86-88로 무릎을 꿇었다. 2승 3패의 이집트는 남수단(3승 2패)에게 밀려 아프리카 최고의 팀에게 주어지는 '2024 파리올림픽 자동진출권'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과 연관이 깊은 경기였다. 바로 KBL 심판이자 FIBA 국제심판인 박경진 심판이 휘슬을 분 경기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LG에서 외국선수로 뛰는 아셈 마레이가 이집트 주전센터로 출전했다. KBL 코트에서 함께 땀을 흘렸던 심판과 선수 사이가 국제대회에서 다시 만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박경진 심판은 깔끔한 진행과 칼 같은 판정으로 무난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몇몇 선수가 몇차례 콜에 불만을 갖고 다가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박경진 심판이 영어로 잘 설명했다. 동료 심판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훌륭했다. 심판은 존재감이 0%일 때가 가장 잘한 것이라고 한다. 이날 경기는 접전임에도 판정시비 없이 무난하게 끝났다. 박경진 심판은 세계최고 무대에서 심판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마레이는 11점, 6리바운드를 올렸지만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만약 이집트가 이겼다면 3승 2패가 되면서 아프리카팀 최고성적으로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이 매우 컸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마레이지만 세계무대는 달랐다. 마레이는 2쿼터에 덩크슛을 시도하다 대차게 블록슛을 맞고 넘어졌다. 본인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마레이는 이번 농구월드컵에서 니콜라 부세비치, 요나스 발렌츄나스, 도나타스 몬티유나스 등 NBA에서도 내로라하는 장신센터들과 대결하며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종료 0.4초를 남기고 이집트가 86-88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와 공을 다툰 마레이에게 네 번째 파울이 선언됐다. 공교롭게 가장 가까이에서 본 박경진 심판이 분 파울콜이었다. 마레이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파울은 분명했다. 뉴질랜드는 마지막 자유투 2구를 일부러 놓쳐 시간을 흘려보낸 뒤 승리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 가보니 뉴질랜드 기자 한 명과 필리핀 기자 두 명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미국대표팀 같은 인기팀이 아니라 마레이를 만나서 취재하기는 매우 수월했다. 한국에서 봤던 인연으로 마레이는 기자를 보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 오늘 경기에서 아쉽게 패했는데?
두 팀 모두에게 어려운 경기였다. 뉴질랜드는 아주 피지컬한 팀이다. 마지막에 한국 심판이 내 파울을 불었는데 볼 경합 과정이었다. 심판이 정확하게 잘 봤다고 생각한다. 피지컬한 경기라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경기 중에는 나도 파울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했지만 말이다. 하하.
- 박경진 심판과 KBL에서 봤던 사이인데 마지막에 결정적 파울을 불어서 서운한 감정은 없나?
서운한 감정은 전혀 없다. 심판이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경기에서 정확한 판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할 일을 아주 잘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파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디오를 다시 보니까 맞더라.
- 오늘 이겼다면 파리올림픽 출전이 확정될 수 있었는데?
오늘 이겼다면 좋았겠지만 (졌으니까) 이제는 최종예선까지 가봐야 알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 올림픽에 갈 가능성이 있으니 계속 도전하고 싶다.
- 농구월드컵에서 이집트를 대표해서 뛴 것만 아니라 KBL 선수를 대표해서도 뛰었는데?
난 KBL과 한국을 사랑한다. 내게 두 번째 고향이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난 시즌에 부상으로 LG의 플레이오프 4강전을 뛰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다친 뒤에 5주간 운동도 못하고 재활하다가 이제는 이집트대표팀에 합류해서 몸을 잘 만든 상태다.
- LG가 양홍석이 합류해서 더 강해졌는데 다음 시즌 기대해도 되나?
그렇다. 리바운드와 수비가 좋은 양홍석이 합류해서 당장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 시즌 더 기대가 된다. 한국 팬들 안녕하세요!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