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표팀은 더 이상 드림팀(Dream team)이 아니다.
미국남자농구대표팀은 1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조별리그 J조 예선에서 몬테네그로를 85-73으로 이겼다. 대회 4연승 무패행진을 달린 미국은 8년 만의 우승트로피 탈환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현재 미국대표팀은 냉정하게 말해 슈퍼스타가 없다.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등 NBA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월드컵 참가를 고사했다. 앤서니 에드워즈와 타이리스 할리버튼 정도만 스타다. 2023년 신인왕 파올로 반케로도 포함됐다.
나머지 선수들은 NBA에서 주전급으로 뛰는 실력파들이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1992년 이후 최악의 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잘해야 4강”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지난 대회 7위에 그친 미국이 왜 이런 선수구성을 했을까.
1998년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서울 올림픽 남자농구 준결승전에서 대학생으로 구성된 미국은 구소련에 76-82로 패했다. 미국이 실력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농구종주국의 자존심에 금이 간 미국은 데이비드 스턴 NBA 총재가 IOC와 담판을 짓고 프로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시켰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드림팀이었다.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칼 말론, 존 스탁턴, 데이비드 로빈슨, 크리스 멀린, 패트릭 유잉, 스카티 피펜, 클라이드 드렉슬러, 크리스챤 레이트너로 구성된 드림팀은 상대를 43.8점차로 격파하며 8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척 데일리 감독은 8경기에서 작전시간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상대팀 선수들이 경기 후 사인과 사진을 요청한 사실은 유명하다.
미국대표팀은 한동안 드림팀2, 드림팀3로 불리며 세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미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6년 사이타마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겼다. 2008년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등이 총출동한 ‘리딤팀’이 구성돼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자존심을 되찾았다. 코비는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경력에 정점을 찍었다.
세계농구와 미국의 격차는 점차 현격하게 줄었다. 현재 야니스 아테토쿤보(그리스), 루카 돈치치(슬로베니아),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등 NBA에서 MVP 경쟁을 하는 탑5 선수 중에 세 명이 유럽선수다. 이제 웬만한 대표팀에 NBA 선수 없는 팀을 찾기 힘들 정도다. 일본에도 하치무라 루이와 와타나베 유타 두 명이 있다. NBA선수가 더 이상 경외와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대표팀도 절대 못 이길 상대는 아니라는 인식이 깔렸다.
이번 미국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전포지션에서 NBA슈퍼스타가 구성됐던 과거와는 다르다. 미국의 전력이 가장 강하고, 포지션에 고른 선수가 포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고스타는 루카 돈치치다. 미국이 전승을 하고 있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미국은 2023 농구월드컵에서 4연승을 달렸지만 점수차는 28.8점으로 줄었다. 몬테네그로전은 고전 끝에 12점차로 이겼다.
교체로 들어간 할리버튼은 23분 30초를 뛰면서 10점, 6어시스트, 2스틸을 올렸다. 이 정도 선수가 벤치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위엄이기는 하다. 수훈선수에 선정된 할리버튼은 스티브 커 감독과 함께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어렵게 질문권을 따내서 할리버튼에게 “사람들이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 슈퍼스타들이 빠진 미국대표팀이 더 이상 드림팀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선수들은 더 동기부여를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물어봤다.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할리버튼은 최대한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을 해줬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를 드림팀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선수구성만 놓고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가치판단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난 농구선수로서 어떻게 하면 이 팀이 더 강해질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NBA에서 듀얼가드들이 대세로 자리를 잡았지만 할리버튼은 흔치 않게 동료들을 살려주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우리 팀의 재능을 보면 여기서 내 역할은 동료들을 득점하도록 계속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물론 NBA시즌에서는 득점과 플레이메이킹의 균형 있게 하려고 하지만 여기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경기를 더 영리하게 풀어가려고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팀 전체가 정말 잘하게 될 것”이라며 팀을 우선시했다.
할리버튼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5년간 2억 6천만 달러(약 3456억 원)에 맥시멈 연장계약을 한 비싼 몸이다. 하지만 코트 안에서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이런 선수가 교체선수로 뛰는 미국대표팀은 더 이상 ‘드림팀’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가장 강하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