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마닐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는 누구일까?
미국남자농구대표팀은 1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조별리그 J조 예선에서 몬테네그로를 85-73으로 이겼다. 대회 4연승 무패행진을 달린 미국은 8년 만의 우승트로피 탈환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농구가 국기이자 신앙인 필리핀은 그야말로 농구에 미친 나라다. 이런 곳에서 농구월드컵이 개최됐으니 필리핀 전체가 농구천국이 됐다. 비록 한국농구는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세계최고 농구를 취재하기 위해 마닐라를 찾았다. 기자가 마닐라 공항에 내리자마자 농구월드컵을 어떻게 관전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마닐라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유명하다. 기자가 숙소에서 경기장까지 8km 정도 택시 타고 이동했는데 40분이 걸렸다. 하지만 경기장 주변은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총출동해 모든 교통과 인원을 철저히 통제했다. 일반 팬들은 티켓을 보여주지 않으면 경기장 주변에 접근도 못하게 했다. 필리핀이 진심을 다해 농구월드컵을 국가적 행사로 치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2년 개장한 ‘몰 오브 아시아 아레나’는 최대 2만명을 수용하는 아시아 최고시설을 자랑했다. 규모와 시설에서 NBA 경기장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했다. 기자는 마치 LA 레이커스 홈구장 크립토닷컴 아레나에 와 있는 착각을 느꼈다. 기자석 규모도 전세계에서 온 기자 2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한국에서 취재 온 언론사는 본 기자가 유일했다. 기자증을 발급받는 데만 2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필리핀 특유의 느긋한 문화를 제대로 체험했다.
세계최강 미국대표팀은 농구월드컵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팀이다. 미국팀 경기 입장권은 프리미엄이 붙어 웃돈을 줘야 겨우 살 수 있다고 한다. 언론사도 미국팀 경기를 보고싶기는 마찬가지다. 워낙 취재를 원하는 기자들이 많다 보니 미국언론사가 아니면 취재인원을 제한하기도 한다. 결승전은 취재신청을 한 인원 중에서 추첨으로 당첨된 사람만 허가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미국의 예선경기는 어렵지 않게 취재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미국의 인기는 확실히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은 모두 대표팀 참가를 고사했다. 트레이 영 등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들도 빠졌다. 현재 대표팀은 앤서니 에드워즈와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제외하면 사실상 3군 전력 정도다.
필리핀 사람들이 아무리 농구를 좋아해도 오후 4시 40분에 열린 경기에 생업을 포기하고 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입장권 가격은 499페소(약 1만 2천 원)에서 2만 7299(약 64만 원) 정도다. 필리핀 국민들이 부담을 느끼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국전 전반전까지 절반밖에 차지 않았던 관중석은 경기 후반에 어느덧 가득 찼다. 필리핀 사람들이 농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대표팀의 경기력은 예전에 비해 너무 떨어졌다. NBA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실력파 선수들이 모였지만 팬들의 이목을 한번에 끌 수 있는 스타는 없다. 대회 최고의 슈퍼스타는 루카 돈치치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선수는 의외로 오스틴 리브스였다. 르브론 제임스의 레이커스 동료로 필리핀에서 유독 인지도가 높았다. 잘생긴 얼굴에 최근 활약까지 좋다 보니 리브스만 나오면 소리를 지르는 팬들이 많았다. 미국에 이기적이고 게으른 스타가 없다 보니 다들 열심히 뛰고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점은 그나마 장점이었다. 이날 리브스는 4쿼터 막판 쐐기 3점포를 터트리는 등 12점, 3스틸로 대활약했다. 특히 박빙의 승부에서 자유투를 11개나 얻어 9개를 성공했다.
미국은 몬테네그로를 상대로 시작부터 4-11로 끌려가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NBA올스타 센터 니콜라 부세비치가 버틴 골밑을 미국도 쉽게 공략하기 어려웠다. 앤서니 에드워즈가 신기에 가까운 유로스텝으로 득점을 했지만 혼자서 경기를 지배할 정도는 아니었다. 4쿼터 중반까지 미국이 64-62로 겨우 리드하며 꾸역꾸역 점수를 쌓았다.
주전과 후보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 미국의 최고강점이다. 식스맨으로 투입된 리브스, 할리버튼, 파올로 반케로의 경기력이 훨씬 좋았다. 결국 미국은 막판 집중력을 발휘하며 12점차로 이겼다. 미국이 승리하긴 했지만 압도적으로 못 이길 상대라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리브스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이 100명 넘게 한꺼번에 믹스트존에 몰렸다. 덩치 큰 미국과 유럽 기자들 사이에서 취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간신히 손을 뻗어서 리브스와 인터뷰에 성공했다.
리브스는 인터뷰에서도 매우 겸손하고 예의 바른 선수였다. 대선배 르브론 제임스에게 혼나는 인턴사원 밈에서 본 성격 그대로였다. 리브스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미국대표팀에서 뛸 수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항상 자신감을 갖고 뛰고 있다. 내 플레이는 자신감에서 나온다”며 웃었다.
이 정도 활약이면 리브스가 미국대표팀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는 말도 진지하게 나오고 있다. 리브스는 “미국대표팀은 주전과 후보의 구분이 의미 없을 정도로 다들 잘하는 선수들이다. 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유독 인기가 많다는 질문도 했다. 리브스는 “필리핀 팬들이 정말 농구를 사랑하는 것 같다. 많이 알아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미국은 3일 리투아니아와 결전을 치른다. 이번 월드컵에서 미국과 맞붙는 가장 강한 상대다. 리브스의 활약이 계속될지 궁금하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