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빛이 사그라지는가 했다. 퇴색의 기미를 보이면서 활동 마당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로 옮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알나스르) 아니었던가.
그런데 아직은 끝자락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가 싶다.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회광반조(回光返照)하듯 되살아난 몸놀림을 펼쳐 보인다. 골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빼어난 골잡이답게 또 하나의 세계 기록을 세운 호날두다.
지난 8월 29일(현지 일자) 프로페셔널리그 알샤바브전(4-0 승)에서, 호날두는 포효했다. 선제 결승골을 비롯해 2골을 터뜨리며 “난 살아 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한창때 세계 최고 무대인 유럽 리그를 주름잡으며 ‘기록 제조기’로 성가를 드높였던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득점력을 뽐냈다.
축구 기록사(史) 측면에서, 세계 신기록이 수립된 한판이었다. 한 선수가 몸담았던 각 국가 리그 득점을 합산한 기록에서, 호날두는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517골. 20세기 중반 위대한 골잡이로 명성을 드날렸던 요제프 비찬(오스트리아→ 체코)과 푸슈카시 페렌츠(헝가리→ 스페인)가 함께 갖고 있던 종전 최고 기록(515골)을 두 골 능가하는 대단한 기념비적 골 수확이다(표 참조).
골 사냥터 수준에서 메시가 한 골 차 우위… 유럽 5대 리그 골 수확량에서 496:495로 앞서
호날두는 득의양양했을 법하다. 자신과 함께 ‘신계의 사나이’로 불리는 ‘영원한 맞수’ 리오넬 메시(36·인터 마이애미 CF)에게 짓눌리는 듯한 요즘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를 세계 기록을 세웠으니, 웃음을 지을 만하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작성한 각종 골 기록을 깨뜨리는 메시를 보며 속이 쓰라렸을 호날두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소 다른 듯싶다. 외형적으로는 호날두가 앞서나, 순도 면에서 보면 메시가 우위에 있음이 엿보인다.
호날두는 2002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스포르팅 CP에서 1부리그에 입문했다. 그때(2002-2003시즌) 3골을 시작으로 22시즌에 걸쳐 517골을 터트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3-2004~2008-2009시즌, 2021-2022~2022-2023시즌)에서 103골을, 스페인 라리가(레알 마드리드·2009-2010~2017-2018시즌)에서 311골을, 이탈리아 세리에 A(유벤투스·2018-2019~2021-2022시즌)에서 81골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알나스르·2022-2023~2023-2024시즌)에서 19골을 각각 뽑아냈다.
메시는 2004-2005시즌 스페인 라리가 바르셀로나에서 1부 무대에 데뷔했다. 첫 시즌(2004-2005)엔 미약했으나, 갈수록 광채를 발했다. 라리가(바르셀로나·2004-2005~2020-2021시즌)에서 474골을, 프랑스 리그 1(파리 생제르맹·2021-2022~2022-2023시즌)에서 22골을,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인터 마이애미·2023시즌)에서 1골을 각각 결실했다.
겉으로 보면 분명 호날두가 앞선다. 20골로, 작은 격차가 아니다.
그러나 골 사냥터(리그) 질을 염두에 두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무래도 유럽 5대 리그에 비해 수준이 뒤떨어지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나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그 또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를 제외하고 비교하면, 메시가 다소나마 우위에 있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나타난 골 수확량으로 외연을 좁혔을 때, 메시가 1골 더 많다. 메시는 496골을, 호날두는 495골을 각각 거둬들였다.
나이를 감안했을 때, 호날두와 메시가 유럽 5대 리그로 회귀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만일 둘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면, 호날두가 메시에 역전할 가능성은 0이다. 호날두는 리그 득점 합산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랬건만 마냥 기쁨을 만끽하기엔,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찜찜하지 않을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