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드높이고 북돋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을까, 아니면 체력을 비축하고 안배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했을까? 그 갈림길에서,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그 결과는 토트넘 홋스퍼의 EFL컵(카라바오컵) 조기(2라운드) 탈락으로 나타났다.
2023-2024시즌 초반, 토트넘은 잘나가는 모양새였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3위(31일 현재·이하 현지 일자)에 올라 있다. 2승 1무, 아직 패배를 모른다.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표방한 ‘공격 축구’가 주효한 듯한 형세다.
그런데 그 상승세가 꺾였다. 지난 29일, 풀럼에 일격(1-1, 승부차기 3-5)을 맞고 일찌감치 EFL컵 도전의 여정을 접었다. 비록 리그컵일망정 새 술을 담기 위한 새 부대를 쟁취하려던 야망은 허망하게도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피할 수 있었던 패배의 나락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진한 아쉬움마저 낳는다.
결과적으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취한 전략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장기적 포석에 기반을 두고 풀럼전을 치렀는데, 토트넘이 절박하게 갈구하는 방향성과는 다소 동떨어진 전략에서 비롯한 용병술은 자충수로 끝났다.
리그에 초점 맞춘 선수 운용, 스스로 상승세에 찬물 끼얹은 결과로 나타나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 바둑 또는 장기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말이다. “몇 수 앞을 내다봤는데, 첫수를 어디에 둬야 할지를 잊어버렸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터져 나온다.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다 보면 전체 국면의 흐름을 망각하기 쉬울뿐더러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잠언이라 할 수 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궁구 끝에 내린 결단의 한 수, 곧 체력 안배에 방점을 찍은 용병술은 결국 패착이 됐다. 페넌트 레이스로 펼쳐지는 EPL을 지나치게 의식한 데서 나온 전술이었으나, 시기와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풀럼전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2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경기에 앞서 열린 EPL 3경기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프레이저 포스터가 선발 수문장으로 골문을 지켰을 정도였다. 4-4-1-1 전형으로 포진한 토트넘 스타팅 11 가운데, 주전으로 EPL 3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단 2명 - 왼쪽 센터백 미키 판 더 펜, 원 톱 히샤를리송 – 이었다. 이번 시즌 주장의 중책을 맡은 에이스 손흥민도 후반 26분 교체 투입됐을 만큼, 비주전을 활용한 파격적 선수 운용이었다.
물론, 대부분 감독은 가장 가치가 높은 리그에 초점을 맞춰 용병술을 구사한다. 컵대회와 리그컵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정상 도전의 길을 계속 밟을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결단함은 승부사의 공통된 방향성이다. 이 맥락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풀럼전에 비주전을 대폭 내세웠을 듯싶다. 풀럼에 강한 토트넘의 특질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2진 용병술을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제 EPL은 3라운드를 마친 초반 중 초반이다. 벌써 체력 비축과 안배를 고려함은 성급했다. 오히려 지금은 ‘선발제인(先發制人)’의 묘를 살려야 할 시기였다. 기선을 잡고 치고 나가야 할 때 스스로 발목을 잡고 주저앉은 꼴이 됐다.
풀럼을 너무나 가볍게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풀럼과 맞겨룬 EPL 6경기에서, 토트넘은 5승 1무라는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그야말로 ‘천적’이라 할 만치 풀럼에 절대 강세였다. 그렇지만 상대를 얕보면 반드시 패함[輕敵必敗·경적필패]은 승부 세계의 철칙이다.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온 힘을 다하는 호랑이의 자세가 스쳐 간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용병술은 토트넘의 간절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우승에 굶주린 지 오래인 토트넘이다. 15년 전에 이룬 EFL컵 2007-2008시즌 우승이 마지막 등정이다. ‘토트넘의 황태자’였던 해리 케인도 우승에 목말라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지 않았나. 더구나 2022-2023시즌 8위로 전락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해 각종 유럽 클럽 대항전 무대에 오를 수조차 없는 처지에 내몰린 토트넘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전력상 토트넘의 EPL 정상 정복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컵대회나 리그컵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리그 우승은 몰라도 차선책인 컵대회나 리그컵을 통한 유럽 대항전 무대 티켓을 노려야 할 듯싶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시즌 운용 방략을 다시 한번 곰곰이 살펴봐야 할 까닭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