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59)의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직전 A매치 졸전 후 “90분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선수가 손흥민(31, 토트넘) 뿐”이라고 아쉬워했던 그가 컨디션 최상의 선수를 찾아 나서는 듯보였다. 그러나 ‘부상’ 공격수를 대거 뽑았다. 혹시 모를 기대감 속 묵묵히 몸상태를 끌어올린 선수는 이유도 모른 채 외면당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28일 9월 유럽 원정 친선경기에 나설 남자 A대표팀 25명 명단을 발표했다.
A대표팀을 이끄는 클린스만 감독은 오는 9월 8일 웨일스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웨일스와, 5일 뒤(13일)엔 잉글랜드 뉴캐슬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을 치른다.
클린스만 감독에게 중요한 2연전이다. ‘첫승’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의 3월・6월 A매치 4경기 성적은 2무 2패다. 가장 최근(6월 20일) 일본에 0-6으로 대패했던 엘살바도르와 졸전 끝에 1-1로 비겼기에 이번 원정길에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면 안 그래도 좋지 못한 클린스만호 여론이 더욱 악화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를 클린스만 감독이 모를 리 없다.
클린스만 감독, 9월 명단 최선의 선택이었나... 부상자 및 경기력 저하 우려 선수 대거 포함
앞으로 자신의 입지와 직결될 중요한 두 번의 평가전을 앞둔 클린스만 감독은 ‘말로는’ 그 어느 때보다 명단 꾸리기에 심혈을 기울인 듯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의문 투성이다. ‘진지하게, 깊이 고민을 했나’ 싶을 정도다.
9월 클린스만호에 부상 및 경기 감각 저하로 합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보였던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반면 이들보다 왕성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던 선수는 뽑히지 않았다.
불과 2개월 전 클린스만 감독이 공개적으로 내비친 의중과 180도 다른 결과다. 지난 6월 클린스만 감독은 엘살바도르전을 마친 뒤 풀타임 소화 가능한 선수가 손흥민 밖에 없다며 ‘공격 축구’로 더 나아가기 위해 경기 체력이 받쳐주는 선수를 원한단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각각 허벅지와 종아리 부상으로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조규성(미트윌란)과 오현규(셀틱)를 이번 9월 A매치 명단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프리시즌 때 다친 오현규는 리그 개막 후에도 여전히 회복에만 전념하며 셀틱의 3경기를 모두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봤다. 오현규의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황의조의 승선도 의외다. 노팅엄 포레스트 소속인 그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개막 후 3경기째 굴욕의 ‘0분 출전’을 유지하고 있다. 부상 이슈가 없지만 그라운드에 나설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허벅지 부상을 당한 황희찬(울버햄튼)도 클린스만 감독은 불러들였다.
당장이라도 풀타임 소화가 가능한 공격수를 모셔올 것처럼 보였던 클린스만 감독은 정반대로 무려 4자리를 경기 감각 저하가 불가피한 선수들을 위해 썼다.
'경기 체력' 좋은 선수 원한다던 클린스만 감독, 국내 리그 최고 '골잡이' 외면
클린스만 감독은 2021년 K리그1 득점왕 출신이자 올 시즌 리그 28경기 중 26경기를 소화하며 경기 체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울산현대 공격수 주민규를 외면했다.
주민규는 K리그 확실한 골잡이다. 올 시즌 득점 공동 선두(13골)를 질주하고 있다.
‘최전방 공격 자원’ 황의조-조규성-오현규 중 한 명이 이탈하면 주민규가 유력 대체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2개월 전 밝힌 방향성을 순식간에 잃은 클린스만 감독의 눈에 주민규는 끝내 들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의 부상은 A매치 준비의 가장 큰 변수다. 다행히 조규성과 황희찬의 경우 소속팀과 계속 소통하면서 이번 소집 합류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명단에 포함시켰다”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기존 A대표팀 명단 발표는 기자회견과 함께 진행했다. 명단 발표 후 곧바로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선수들의 선발 배경을 감독으로부터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소통 창구가 닫혔다.
명단 발표 후 부상 및 기타 이슈로 빠지는 선수들이 있을 수 있단 클린스만 감독의 의견만을 수렴한 KFA는 기존 룰을 깼다. 보도자료로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통보, 반발 속 그대로 이행했다. KFA의 도움으로 클린스만 감독은 앞뒤가 다른 행보를 묻는 질문을 편하게 피할 수 있게 됐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