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한 젠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룰러’ 박재혁이라는 팀을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와 최고 서포터로 불리는 ‘리헨즈’ 손시우가 팀을 떠난 상황에서 도 새로운 성장 동력인 ‘페이즈’ 김수환과 ‘딜라이트’ 유환중 등 신예 발굴에 성공하면서 2023년 LCK를 지배하는 팀이 됐다.
지난해 여름 서머시즌 부터 올 여름까지 무려 세 번의 스플릿에서 연속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역대 LCK에서 왕조로 붏린 팀은 T1과 디플러스 기아. 이제 젠지도 ‘왕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명가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젠지는 지난 20일 대전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서머 T1과 결승전에서 한 수 위의 움직임과 전략 전술이 맞물리면서 3-0 완승을 거뒀다. 이로써 젠지는 2022년 서머부터 2023년 스프링과 서머를 연달아 우승하면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LCK 3연속 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T1, 디플러스에 이어 세 번째 ‘쓰리핏’
정규 리그를 2위로 마친 젠지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한화생명을 격파하고 결승전에 직행했다. 젠지의 결승전 상대는 T1이었다. T1은 19일 열린 2023 LCK 서머 최종 결승 직행전에서 '이동 통신사 맞수' KT를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면서 어렵사리 결승전에 올랐다.
T1이 젠지의 결승전 상대로 결정되면서 LCK 역사상 초유의 기록이 세워졌다. 11년 동안 이어져온 LCK 역사에서 똑같은 팀이 네 번 연속 결승전에서 맞붙은 것은 젠지와 T1이 처음이다.
2022년 서머와 2023년 스프링 결승전에서 이미 T1을 꺾어본 젠지는 T1의 패턴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결승전 1세트부터 치고 나갔다. 초반에 라인전에 치중하며 잠잠하던 젠지는 '쵸비' 정지훈의 탈리야가 발이 풀리면서 연달아 킬을 만들어냈고 15킬 이상 차이를 벌리면서 승리했다.
2세트에서도 비슷한 패턴으로 승리한 젠지는 3세트에서 T1의 저항에 휘말리면서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중반까지 킬 격차를 벌리던 젠지는 T1의 '페이커' 이상혁과 '구마유시' 이민형의 노련한 플레이에 휘둘리며 동점을 허용했지만 후반 집중력에서 한 발 앞서면서 세 스플릿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젠지의 주장인 정글러 '피넛' 한왕호는 개인 통산 LCK 6회 우승을 달성했다. 이는 현역 선수 가운데 T1의 미드 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이다.
'쓰리핏'을 통해 '왕조'를 구축한 젠지에게는 상금 2억 원이 주어졌고 팀이 원하는 플레이를 척척 해낸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은 파이널 MVP로 선정돼며 상금 500만 원을 받았다. 젠지에게는 티파니가 제공한 우승 반지가 주어지며 MVP 정지훈에게는 브레이슬릿이 제공된다. 부상품에는 선수들의 이름 또는 소환사명이 각인될 예정이다.
‘스코어’ 고동빈 감독과 원상연 코치의 존재
젠지의 강점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격의가 없다는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팀의 최고참 ‘피넛’ 한왕호를 위시해 ‘도란’ 최현준, ‘쵸비’ 정지훈 등 최정상급 상체라인 뿐만 아니라 신예 봇 듀오인 ‘페이즈’ 김수환과 ‘딜라이트’ 유환중이 똘똘 뭉쳐서 발휘하는 힘은 ‘팀’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황에 따라 상체 중심, 하체 중심을 자유자재로 선택해 특정 한 명이 중심이 되지 않고, 철저하게 팀으로 움직이는 조직력과 응집력은 가히 일품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고동빈 감독과 원상연 코치가 있었다. 고동빈 감독은 “결승 준비를 하면서 3-0의 예감이 왔다. 선수들의 워낙 열심히 잘 해주고, 성실하게 시즌을 임했다. 노력의 결과가 따라온 값진 우승이다. 이제 우리를 강팀으로 불러주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롤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선수들의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고 감독과 원 코치의 존재가 없었다면 2023년 젠지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지난 2022년 부임이래 고동빈 감독은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젠지를 결승에 올렸다. 네 번의 결승에서 세 번의 우승. 고동빈 감독과 원상연 코치가 있는 한 젠지는 언제나 우승후보다.
'피넛' '쵸비' '도란' 베테랑 3인방의 역할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라는 e스포츠 종목은 5명의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하기에 그 무엇보다 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보이지 않은 분위기에 잘 나가던 팀이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작은 행운이 커다란 결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고참 선수들이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솔선수범한다면 어린 후배들을 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특정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는 팀이 바로 젠지다. 젠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고동빈 감독 이외에도 ‘피넛’ 한왕호, ‘쵸비’ 정지훈, ‘도란’ 최현준 등 베테랑의 역할이 막중했다. 경기 내적 요소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수직 구조가 아닌 수평 구조를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져오게 해 시즌 내내 팀 분위기를 진지하지만 구김살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조성했다.
3연속 우승으로 ‘쓰리핏’을 달성했지만, 젠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있다. LCK를 대표하는 팀으로 왕조를 연 만큼 젠지의 도전은 계속된다. /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