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59)은 한국 축구에 아시안게임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A매치 기간과 겹치는 황선홍 감독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마지막 국내 소집 훈련에 이강인(22, 파리 생제르맹)을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한국 성인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7일 줌(온라인화상통화프로그램)을 통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의 ‘황선홍호 조기합류’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의견을 내비쳤다.
현재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에 있다. 지난 6월 A매치 직후 한 달 휴가를 가진 뒤 7월 24일 귀국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인 8월 1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오는 9월 8일 웨일스와 평가전이 열리는 웨일스의 카디프로 바로 건너갈 예정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해외에 체류하면서 자선 사업 회의를 비롯한 개인 일정 소화에 비중을 크게 두며 대표팀 감독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그는 직접 온라인 기자회견을 자청, 여러 질문에 답했다.
이 자리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의 컨디션이 정상이라면 9월 유럽 원정 A매치(8일 웨일스전, 13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 함께 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같은 기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국 직전 ‘완전체’ 소집훈련을 원하는 황선홍 감독 체제의 24세 이하(U-24)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강인을 양보하지 않겠단 생각인 것이다.
어느새 A대표팀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은 22세 이강인은 아시안게임 3연패를 목표로 하는 황선홍호에도 없어선 안될 인재다.
그러나 이강인은 황선홍호가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합을 맞춰볼 수 있는 소집훈련에 함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내달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다. 대회 기간에 비해 경기 수가 많은 축구는 공식 개막식보다 먼저 일정을 소화한다. E조에 속한 한국은 19일 진화 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쿠웨이트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갖는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21일 태국, 24일 바레인을 차례로 상대한다.
한국은 13일~15일 사이에 개최지 중국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강인이 A매치를 치르고 중국으로 바로 합류하면 사실상 그가 정상 컨디션으로 훈련할 날은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특출 난 선수라 할지라도 동료들과 ‘합’을 맞춘 시간이 많지 않으면 바로 경기에 투입될 가능성은 낮다. 빨라야 조별리그 3차전 출격이 예상된다.
이강인에게도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상당히 중요하다. 금메달을 획득하면 병역 특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달 14일 최종 명단을 발표할 때 “이강인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 의지는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에 따르면 이강인의 아시안게임 차출 시 PSG가 응하는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 돼 있다. 즉, 앞서 우려를 산 이강인의 황선홍호 합류에 PSG 차출 반대는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강인에 대한 권한은 우선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이 갖는다. 클린스만 감독은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A대표팀에 합류할진 아직 모른다. 24세 이하 팀과 선수단 운영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혹시나 겹치는 선수가 있다고 하면 A대표팀 경기를 먼저 치르고 그다음에 아시안게임에 합류하는 방향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A매치 때 우리도 이강인을 활용해야 한다. A대표팀 경기를 먼저 치르게 한 뒤 24세 이하 대표팀으로 보내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황선홍호의 아시안게임 호성적 초석은 ‘조직력’이다. 출국 직전 국내에서 있을 ‘완전체’ 소집훈련에 빈틈이 없어야 하는 이유다. 이강인의 조기합류가 필수로 여겨지지만 아직 ‘첫승’이 없어 100% 전력으로 A매치를 치르고 싶은 클린스만 감독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의 황선홍호 ‘조기합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건너뛰어도 된다고 여기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A매치 경기와 아시안게임 경기 일정이 겹치지 않는다. 이강인이 A대표팀에 차출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경기를 못 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리 합을 맞추는 것을 지향하고 ‘원팀’으로 움직이는 황선홍호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발언이다. 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축구의 발전에 힘쓰고 싶고, 아시안게임의 중요성도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타당성도 잃었다.
5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땐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튼) 등 해외파가 예상보다 일찍 합류했다. 이는 한국이 2회 연속 챔피언 자리를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가 A매치 대신 아시안게임에 올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엔 기류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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