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이라는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23년이라는 시간을 초록 잔디의 사각형 안에서 살아온 것이 가장 먼저 다가옵니다. 마냥 뛰어 놀기를 좋아했던 저는 13살이라는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23년을 달려 왔네요."
여자축구국가대표 골키퍼 윤영글(35)이 23년 이어왔던 선수생활의 은퇴를 선언했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던 윤영글은 6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축구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면서 "일평생의 삶이 한 편의 책과 같다면, 축구선수 생활은 저의 인생에 한 챕터였다. 이제 그 챕터의 마지막 문장과 함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윤영글은 "항상 핑크빛만 맴도는 길을 걸어온 것은 결코 아닌 것을 많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수많은 부상들, 혼자 삼켰던 눈물들, 비시즌과 시즌 동안 끊임없이 몸을 만들고, 프로라는 위치에서 저를 혹독하게 몰아세워 가며 한 경기, 한 경기를 준비하고 임했다"고 "때로는 좋은 결과로,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기쁨과 낙심을 경험한 축구선수의 인생이었다"고 선수생활을 돌아봤다.
또 윤영글은 "필드 선수에서 골키퍼로 전향하였던 시기에는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길이 내 길이라 여기며 더 자신을 갈고닦으며 지금까지 달려왔다"면서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포지션이라 그 무게감을 감당하기 위해 제 자신을 나태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훈련과 절제된 삶을 가지고 항상 준비해 오며 걸어온 축구선수의 인생이었다"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윤영글은 WK리그 출범 전이던 지난 2008년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하지만 2009년 부상으로 필드 플레이어에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당시 서정호 감독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윤영글은 1년 만에 다시 필드 플레이어로 돌아온 뒤 2012년 수원시시설관리공단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소속팀 골키퍼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다시 골키퍼 제안을 받아들였다.
윤영글은 2017년 신생팀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이적한 뒤에는 수비수로 가끔 필드 플레이어를 병행하기도 했다. 은퇴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던 윤영글은 김풍주 당시 골키퍼 코치의 지도 속에 골키퍼로 자리를 굳혔고 오르후스(덴마크) GF 위민으로 이적, 여자축구사상 최고 유럽 무대에 진출한 골키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헤켄 FF에서 뛰기도 했다.
20세 이하(U-20) 대표팀 경력자 윤영글은 골키퍼 전향 후 2015년 캐나다 여자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성인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8년 요르단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아시안컵에서 존재감을 보였던 윤영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명단에 포함돼 동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다.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무릎 부상으로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한 윤영글은 이번 호주-뉴질랜드 대회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콜롬비아와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윤영글은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당연히 후회를 할 수 있겠다.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프로라는 자리에서, 특히나 국가대표로 월드컵이란 중요한 자리에서 아쉬운 결과를 보이며, 23년간의 축구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면서도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왔었고, 부끄러움 없이 제 자신을 지금까지 훈련해 왔기에, 저는 후회하는 축구선수의 인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달려온 축구선수 인생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윤영글은 "아쉬운 경기력으로 축구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남기게 되었더라도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로 아쉬움이 아닌 감사함으로 저의 축구선수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면서 "축구선수로서 살아온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으니, 이 마침표는 아쉬움이 아닌 감사함인 것 같다. 축구선수 생활의 챕터는 이렇게 마침표가 찍히지만 인생의 다음 챕터에서도 역시 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윤영글의 소셜 미디어 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윤영글입니다.
23이라는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23년이라는 시간을 초록 잔디의 사각형 안에서 살아온 것이 가장 먼저 다가옵니다. 마냥 뛰어놀기를 좋아했던 저는 13살이라는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23년을 달려왔네요.
그 시간 동안, 항상 핑크빛만 맴도는 길을 걸어온 것은 결코 아닌 것을 많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수많은 부상들, 혼자 삼켰던 눈물들, 비시즌과 시즌 동안 끊임없이 몸을 만들고, 프로라는 위치에서 저를 혹독하게 몰아세워 가며 한 경기, 한 경기를 준비하고 임하였지만, 때로는 좋은 결과로,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기쁨과 낙심을 경험한 축구선수의 인생이었습니다. 필드 선수에서 골키퍼로 전향하였던 시기에는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길이 내 길이라 여기며 더 자신을 갈고닦으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포지션이라, 더욱 무게감이 막중했지만, 그 무게감을 감당하기 위해 제 자신을 나태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훈련과 절제된 삶을 가지고 항상 준비해 오며 걸어온 축구선수의 인생이었습니다.
‘후회’라는 단어를 ‘최선’으로 바꿔놓기로 했습니다.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당연히 후회를 할 수 있겠지요.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프로라는 자리에서, 특히나 국가대표로 월드컵이란 중요한 자리에서 아쉬운 결과를 보이며, 23년간의 축구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왔었고, 부끄러움 없이 제 자신을 지금까지 훈련해 왔기에, 저는 후회하는 축구선수의 인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달려온 축구선수 인생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냥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한 선수였습니다.
매번 주전 자리를 위해 경쟁해 오면서 살아야 했던 축구선수 여정 중에서도,
저는 좋은 지도자와 동료 축구선수들, 그리고 저를 믿고 지지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기에, 저는 참 행복한 선수였던 것 같습니다. 부상 중에도, 주전 선수로 뛰지 못했을 때도, 그리고 좋은 경기를 보여 드리지 못했을 때라도 동일하게 저와 함께 걸어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저는 행복한 축구선수였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저를 증명하게 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며,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을 때 허락된 좋은 만남 들이 저의 축구선수 인생의 여기저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축구선수였습니다.
축구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일평생의 삶이 한 편의 책과 같다면, 축구선수 생활은 저의 인생에 한 챕터였습니다. 이제 그 챕터의 마지막 문장과 함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할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아쉬운 경기력으로 축구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남기게 되었더라도, 저는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로 아쉬움이 아닌 감사함으로 저의 축구선수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축구선수로서 살아온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으니, 이 마침표는 아쉬움이 아닌 감사함인 것 같습니다. 축구선수 생활의 챕터는 이렇게 마침표가 찍히지만,
인생의 다음 챕터에서도 역시 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려 합니다.
저에게 그동안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이두철 감독님, 유호천 감독님, 하재철 감독님, 김풍주 코치님, 이미연 감독님,
황인선 감독님, 서정호 감독님, 고문희 감독님, 이재석 코치님, 정유석 코치님,
곽상득 코치님, 박규홍 코치님, 오명일 차장코치님,
그리고 많은 도움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송숙쌤, 민아쌤, 애경쌤, 성희쌤, 나경쌤, 은혜쌤, 설아쌤, 민희쌤, 근혜쌤, 나현쌤,
주현쌤, 민채쌤, 지회쌤, 수현쌤, 지안쌤, 상권쌤, 성민쌤, 현규쌤, 은정쌤, 윤정쌤,
용준쌤, 예송쌤, 영주언니, 지후, 은희언니, 창석님…
끝으로 저의 가장 소중한 인연
저의가족, 동대문날다람쥐, 지율언니, 성규 오빠에게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했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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