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세월은 무상한가 보다. 덧없게 느끼게 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기울지 않고 다가왔다 사라져 가는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변의 흐름 앞에서, 꺾임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당연히 마찬가지로, 스포츠계도 뿌리칠 수 없다. 영원한 강자로 남겠다는 도전을 비웃는 양 서슬이 시퍼렇게 덮쳐 온 세월의 기세는 너무도 무섭기만 하다. 신화의 발자취를 그려 가던 위대한 레전드들도 속절없이 쓰러짐을 강요하는 세월의 운명에 버티기란 버겁기만 한가 싶다.
시간의 흐름은 2023 호주-뉴질랜드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7월 20일~8월 20일)으로 들이닥쳤다. 그 형세는 마치 노도같이 두 걸출한 월드 스타를 집어삼켰다. “세계 여자 축구 지존은 나다”라고 외치며 20년간 여자 월드컵에서 전설을 쌓아 가던 그들이었건만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축구 여제’ 크리스틴 싱클레어(캐나다·40)도, ‘여자 월드컵 아이콘’ 마르타(브라질·37)도 전설의 발걸음을 멈추었다. 비록 작은 한 걸음은 떼었을망정, 보다 큰 도전의 발걸음은 내딛지 못했다. ‘여제(女帝)’와 ‘아이콘(Icon)’의 한판 다툼이 펼쳐질 ‘각광의 무대’로 기대를 모았던 이번 월드컵은 오히려 두 위대한 선수가 전설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서글픈 공간’이 됐다.
6연속 월드컵 본선 마당은 밟았지만, 연속 본선 득점은 5에서 그쳐
지난 세월, 두 월드 스타는 빼어난 골 사냥 솜씨를 뽐내 왔다. 싱클레어는 A매치에서(190골), 마르타는 여자 월드컵에서(17골)에서 각각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며 거침없는 ‘전설의 길’을 밟아 왔다. 2003 미국 대회에서부터 2019 프랑스 대회까지 월드컵 공간에서, 둘은 끊어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겼다.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에서, 싱클레어와 마르타는 대망의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 똑같이 6연속 본선 마당을 밟으며 6연속 본선 득점의 열망을 부풀렸다. 작은 토끼는 잡았다. 6연속 본선 무대에 오르는 꿈은 이뤘다. 그러나 더 불태웠던 갈망인 큰 토끼는 포획할 수 없었다. 6연속 본선 득점의 신기원은 끝내 열지 못했다.
싱클레어는 그룹 스테이지 세 경기에 – 나이지리아(0-0 무), 아일랜드(2-1 승), 호주(0-4 패) - 모두 모습을 보였다. 부상을 극복한 지 얼마 안 된 마르타는 첫 두 경기엔 – 파나마(4-0 승), 프랑스(1-2 패) - 엔 후반 막판 교체로 투입됐고, 마지막 자메이카전(0-0 무)에선 81분을 소화하고 물러나왔다. 둘 모두 전·후반 90분간을 풀로 소화한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참고로, 이 부문 기록은 브라질의 포르미가가 세운 바 있다. 포르미가는 열일곱 살이던 1995 스웨덴 대회부터 마흔한 살이던 2019 프랑스 대회까지 7연속 월드컵 본선 마당을 밟았다.
그래도 어쨌든 3경기에 나왔던 둘이지만, 골 획득의 꿈은 좌절되는 쓰라림을 안았다. 특히, 싱클레어는 6연속 월드컵 본선 득점의 신기원을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을 듯싶다. 조별 라운드 첫판 나이지리아전 후반 초반에, 자신이 얻어 낸 페널티킥 상황에서 키커로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대기록 최초 수립의 영광을 스스로 눈앞에서 날려 버렸다.
20년 전 미국 대회에서, 나란히 무대에 오른 뒤 월드컵 득점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뜨겁게 다퉈 오던 둘이었다. 그때, 마르타는 한국을 발판 삼아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룹 스테이지 첫판 한국전(3-0승)에서, 페널티킥 선제 결승골로 첫 작품을 내놓았다. 싱클레어는 독일을 디딤돌로 월드컵 득점 포문을 열었다. 조별 라운드 독일전에서 선제골을 잡아냈다. 다섯 번 모두 본선 무대에 나타났고, 그때마다 골을 터뜨렸던 두 레전드였다. 비록 한 골일망정 한 대회를 통째 헛농사로 날린 적은 없었다.
각각 캐나다와 브라질의 주득점원인 싱클레어와 마르타의 골 침묵은 그대로 팀 부진으로 이어졌다. 묘하게도, 캐나다(그룹 B)와 브라질(그룹 F) 모두 3위로 16강 결선행 티켓을 놓쳤다. 공교롭게도, 1승 1무 1패라는 점도 똑같았다. 그나마 신의 공평한 역사(役事)였을까.
결국, 싱클레어와 마르타의 도전도 멈췄다. 앞으로 넘보기 힘든 금자탑을 쌓으려 하며 펼친 두 레전드의 ‘마지막 승부’는 판가름나지 못하고 끝났다. 덧없이 또한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앞세운 신의 ‘희롱’에, 승패의 저울추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신은 앞으로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후예로 누구를 낙점할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