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금부도사가 내려왔다. 열 두어 살 먹은 애 녀석이 포구 쪽을 바라고 걷고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굵은 무명 겹바지 저고리, 바지 가랑이는 걷어 올리고, 맨발에 짚신, 왼편 어깨에는 빈 구럭을 하나 메고 있는데 쌍가풀진 두 눈, 오뚝한 코, 약간 들린 윗입술, 아래로 엿보이는 덧이…보기에도 귀엽고 령리한 애녀석이다.” (『노호하는 바다』 시작 부분)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천변풍경’(1936) 등으로 잘 알려진 월북작가 박태원(1910-1986)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소설 『노호하는 바다』가 최근 발간된 『근대서지』 제27호에 그 내용이 최초로 공개됐다.
『노호하는 바다』는 박태원이 ‘명량(鳴梁=울돌목)’을 한글로 풀어서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명량해전을 집중 조명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박태원이 1965년 북한의 잡지 『로동자』에 연재한 것으로, 1965년 1월호부터 총 6회에 걸쳐 분재 됐다. 소설의 삽화는 월북 유명화가 정현웅의 솜씨다.
박태원은 월북 이후 1952년에 이순신의 일대기인 『리순신 장군전』을 펴낸 것을 비롯해 『임진조국전쟁과 리순신 장군』(1952. 『조선녀성』), 『리순신 장군』(1952. 로동신문), 『리순신 장군 이야기』(1955. 국립출판사), 『임진조국전쟁』(1960. 평양국립문학예술출판사) 등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관련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근대서지』에 귀한 자료를 제공해준 한상언 ‘노마 만리’ 대표(한상언영화연구소 소장)는 “이 소설이 실린 『로동자』는 직업총연맹 기관지로 노동자들이 읽을 만한 흥미로운 글을 주로 실어온, 이를테면 노동자층을 대상으로 한 종합문예지 성격의 잡지”라면서 “이 글이 박태원이 쓴 이순신을 소재로 삼은 마지막 글”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해제(解題)를 맡은 전지니 교수(한경국립대학교 브라이트칼리지)는 “(이 소설은) 월북 이후 박태원이 줄곧 전쟁에서 민중-인민에 대한 서술을 확대한 것과 비교하면, 이순신을 투옥한 조선 조정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임진조국전쟁』을 통해 그간의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집대성했던 박태원이 1965년 시점에서 다시금 명량해전 전후 상황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근대서지학회가 반년간지로 펴내온 『근대서지』(민속원 제작)의 특색 중 한 가지는 옛 북한 문학, 역사 관련 글이나 작품, 작품집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27호에서도 예외 없이 윤복진의 동요 동시집 『시내물』이나 이갑기의 기행수필집 『조국 강산』, 한식의 시집 『역사의 깃발』 등을 자세하게 풀어서 실었다.
이미지 제공=근대서지학회 및 한상언영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