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잡지표지는 그 책의 상징이다. 아무래도 가장 의미 있고 눈길을 끌 만한 요소를 내세우는 게 독자를 사로잡을 비법이라면 비법이 될 테다. 그런 면에서 최근 나온 『근대서지』 제27호(2023년 상반기. 근대서지학회 발행, 민속원 제작)의 표지를 장식한 월북 화가 정현웅의 『로빈손 크루소』는 눈에 확 띈다.
정현웅(1910-1976)은 한국 미술사에서 긴 시간 잊혀 있었던, 잊어야 했던 인물이다. ‘월북’이라는 굴레가 오랜 세월 그의 참모습을 가리고 있었던 터였다. 숨어 있던 그의 미술 업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물론 1988년 ‘해금’ 이후부터지만, 근년 들어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와 ‘정현웅 기념사업회’ 등 유족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방대한 실물 자료 발굴과 전시, 해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현웅 미술 작품집’ 『틀을 돌파하는 미술』(정지석· 오영식 편저. 2012년 소명출판), 『만화가 정현웅의 재발견』 (정현웅기념사업회. 2012년 현실문화), 『화가 정현웅의 책 그림전(展)』 등이 그 결실이다.
『근대서지』 제27호 표지로 꾸민 정현웅의 그림 얘기책 『로빈손·크루소』(1947년 12월 5일 조선아동문화협회 발행)는 여태껏 실물확인이 안 돼 아직 학계에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자료다. 근대서지학회 오영식 회장은 “빠른 시간 내에 연구자를 섭외하여 내용까지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이번에는 표지부터 감상하시기 바란다.”는 소식을 띄웠다.
정현웅의 업적 재조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여러 작업의 소산물 발굴에도 불구, 그의 미술적 전모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서양화가로 출발, 책 표지 장정과 삽화, 아동문학 그림책, 만화 등 일제 강점기 때부터 특히 해방 공간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근대서지』 에 표지그림만 공개한 『로빈손·크루소』는 그 맛 배기인 셈이다.
이번 『근대서지』는 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는 평판을 들은 ‘비운의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의 삽화 20점이 실려 있는 『현대동요선』(한길사. 1949년 3월 발행)도 공개했다.
『현대동요선』은 박영종(박목월 시인의 본명)이 엮은 것으로 표지는 조병덕 화백이 장정했으나 그 안에 삽화를 이인성이 그려 넣었다.
류덕제 교수(대구교육대학교)가 해제한 이 책에 대해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회장은 “‘동요집’은 누구 동요집이든 모두 다 귀하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은 둘째치고 책 자체가 아름답다. 바로 화가 이인성의 삽화 20컷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 이유로 옛날부터 이 책을 구하려 했으나 묘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고, 근자에 들어서는 가격이 너무 올라 ‘언감생심’이 되고 말았다.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두어 달 전 모 경매에 이 책이 나왔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덕에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 낙찰을 받았다.”며 직접 입수한 경위와 소회를 밝혔다.
오영식 회장은 이 동요 책을 구한 다음 “철사 제본된 것을 해체하고 스캔하여 권말영인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스캔한 20컷의 이인성 삽화는 대구에 계신 이인성 화백의 자제분에게도 보내드렸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책의 내용은 『근대서지』 권말영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1949년 3월에는 한길사에서 『현대동요선』이란 제목으로 발행되었고, 같은 내용으로 1950년 6월에 산아방에서 『현대명작동요선』이란 제호로 출판됐다. 이 동요 책에는 박영종 본인의 작품 15편을 비롯해 윤복진 16, 윤석중 15, 강소천 4편과 방정환, 이원수 등 아동문학가들의 작품을 엮은 것이다.
삽화를 그린 이인성(李仁星)은 1912년 8월 28일 대구에서 출생, 대구시 산격동에서 활동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고, 6.25 전란 중 1950년 11월 4일 치안대원의 총탄에 삶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였다. 산격동에는 이인성을 기리는 ‘이인성 사과나무 거리’가 조성돼 그의 작품들을 벽화로 재현해 놓아 대구 시민들의 굄을 받고 있다.
이미지 제공=근대서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