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가 개봉돼 그해 청룡영화상 감독상과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받았다. 현상금 사냥꾼 정우성, 마적단 두목 이병헌, 잡초 같은 생명력의 열차털이범 송강호가 무법천지 만주를 배경으로 벌이는 좌충우돌 대 혼전 액션물이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순한 놈, 착한 놈, 올바른 놈’이었으면 영화가 제작이나 될 수 있었을까?
영화가 그리는 세상은 온통 나쁜 남자의 ‘마라맛’에 중독돼 있다.
맵고 쏘는 맛에 끌리기 시작한 혀는 끊임없이 더 강한 맛을 요구한다. 한이 없다. 중독된 혀를 순화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나는 잔혹한 게임이다.
누군가는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에 환호하는 ‘고독한 미식가’가 돼야 한다. 토요타 하이랜더가 그 중책을 자처했다. 현실에서 나쁜 남자는 나쁜 남자일뿐이기 때문이다.
토요타의 7인승 미드사이즈 SUV ‘하이랜더’는 북미시장에선 설명이 필요 없는 차다. 2001년 1세대가 출범해 2019년 4세대까지 진화하며 글로벌 베스트셀링카 반열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에는 토요타코리아가 올해 공격적으로 태세전환을 하면서 최근 4세대 모델이 처음 선보였다. 모두가 궁금했다. 세계인의 격찬을 받은 차가 어떤 맛일 지.
하이랜더의 첫 맛은 순했다.
토요타코리아의 나카하라 토시유키 전무도 지난 26일의 하이랜더 미디어 시승행사 브리핑에서 하이랜더의 첫 번째 꼽는 장점으로 ‘편안한 승차감’을 내세웠다. 하이랜더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카하라 전무는 “하루 종일 운전을 해도 피곤하지 않은 차”로 하이랜더를 소개했다.
2.5리터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많은 일을 해낸다. 하이브리드라고 태생적으로 순한 맛만 내는 건 아니다.
이 차는 2.5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만으로 188마력을 낸다. 여기에 134kW로 출력이 강력해진 MG2 모터와 리튬이온 배터리가 결합돼 시스템 총 출력 246마력을 발휘한다. 하이랜더로부터 거친 맛을 뽑아내려 했으면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는 스펙이다. 그러나 토요타 엔지니어들은 이 차에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1의 덕목으로 부여했다.
디자인부터 부드러워지기로 작정했다. 외관에선 직선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차체 표면에 떠다니는 라인은 풍부한 볼륨감 위를 자유롭게 여행한다. 규칙은 있지만 강제성은 없는 자연계의 모습이다. 바깥세상의 까다로운 도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믿음직함이 깔려있다.
정숙한 주행에는 전자식 CVT(e-CVT)와 E-Four 시스템이 한몫 한다. 스포트모드, 노멀모드, 에코모드를 선택할 수 있게 해 CVT에 상황별 색깔을 입혔다. 이 또한 ‘편안한 승차감’이라는 대명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 조차도 부드럽다.
시승행사에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트레일모드’도 추가할 수 있다고 한다. 트레일모드는 도로가 전체적으로 미끄럽거나, 어느 한 쪽의 바퀴만 미끄러운 노면, 좌/우 바퀴의 높이 차이가 있는 비포장도로에서도 최적의 구동력을 내게 한다. 이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의 작동 특성과 앞/뒤 구동력 배분 특성을 변화시키고 브레이크의 개별적인 제어를 통해 휠 슬립을 제어한다.
E-Four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후륜 모터를 제어해 사륜구동의 성질을 내는 기술이다. 후륜 모터는 필요할 때만 구동 돼 전∙후륜 구동력을 100:0부터 20:80까지 자동으로 배분한다. 100% 전륜구동차에서 80% 후륜구동차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하이랜더의 최신 플랫폼 TNGA-K(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K)도 ‘편안한 승차감’의 숨은 공로자다.
저중심, 최적의 중량배분, 경량화, 고강성이 특징인 TNGA-K는 견고하지만 맥퍼슨 스트럿과 리어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을 만나 한없이 너그러운 존재가 된다. 이 서스펜션은 회전 반경을 줄이고 충격 흡수 설계로 실내 진동을 감소시킨다.
하이랜더의 두 번째 맛은 착함이다.
7인승 SUV로 개발돼 탑승공간과 적재공간이 널찍하다. 3열 좌석은 성인이 앉기에는 협소하지만 어린이 탑승객들에겐 그들만의 놀이터로 꽤 쓸만하다. 시트가 계단식으로 배치돼 개방된 시야를 제공하고 뒷좌석에도 USB 포트가 있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2, 3열 시트는 평평하게 펼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배터리 위치를 최적화해 플랫 폴딩 기능을 넣었다. 요즘의 아웃도어 라이프에 필수적인 기능이다. 안방이나 거실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착한 공간이다.
세 번째는 친환경적인 올바른 맛이다.
하이랜더의 공식 연비는 복합기준 13.8km/L다. 도심에서 14.3km/L, 고속주행에서 13.3km/L를 얻어 2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 등급은 친환경차 세제혜택 및 공영주차장 할인, 혼잡통행료 면제 같은 저공해자동차 2종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공인 연비 13.8km/L는 말그대로 공인일 뿐이다. 실 운전에서는 믿기 어려운 연비가 나온다.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서 인천 영종도 왕산마리나길까지 가는 코스에서 기자가 운전한 차는 15.6km/L의 연비가 기록됐다. 연비가 잘 나오도록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참가자는 22km/L가 넘는 연비를 얻어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친환경 고효율은 전인류가 생존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올바른 길이다.
순하고, 착하고, 올바른 맛을 내는 하이랜더는 리미티드와 플래티넘 두가지 그레이드로 국내 시장에 출시됐다. 권장소비자 가격은 리미티드가 6,660만 원, 플래티넘이 7,470만 원(부가가치세 포함, 개별소비세 5% 기준)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