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질문을 던져도 아시안컵 이야기로 귀결됐다. 위르겐 클린스만(59)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코치진을 이끌고 1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하지만 의문부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22일 오후 2시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축구회관에서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필두로 베르너 로이타드 피지컬 코치와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 파올로 스트링가라 코치,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 김영민(마이클 김) 코치가 총출동했다.
클린스만호는 6월 A매치 두 경기에서 1무 1패를 거뒀다. 페루를 상대로 0-1로 패했고, 엘살바도르와 1-1로 비겼다. 첫 승 사냥은 또 한 번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최악의 출발이다. 클린스만호는 지난 3월 A매치 2연전에서도 콜롬비아(2-2), 우루과이(1-2)를 만나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부임 후 4경기 무승은 외국인 감독 부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4경기 모두 홈에서 열렸음에도 2무 2패에 그쳤다.
대한축구협회는 6월 A매치 종료 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3월부터 이런 자리를 구상해 왔다며 코치진과 함께 인터뷰하는 시간을 원해 자청했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도 "주요 내용은 부임 이후 각자 맡은 영역에서 바라본 한국대표팀에 대한 생각, A매치 4경기에 대한 전체적 평가와 향후 대표팀 운영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요 화두는 부진한 성적과 클린스만 감독이 지향하는 축구 스타일, 앞으로의 로드맵이었다. 지난 4경기에서는 그가 가진 전술 색채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다만 이날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K리거 활용법과 전술적 지향점, 코치진의 유럽 상주, 경기 평가 등 여러 질문이 나왔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유려한 말솜씨로 핵심을 피해 갔다. 알맹이는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가득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여러 전술을 짤 수밖에 없다", "선수들에게 어떤 축구가 어울리는지 중요하다" 등 보편적인 대답만 이어 나갔다. 추구하는 축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어떤 축구를 하길 원하는지 묻고 싶다"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1시간이 넘도록 많은 말이 오갔지만, 명확하게 내놓은 말은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각오 정도가 전부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어떤 질문에도 아시안컵 이야기로 답변을 마무리하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직은 과정인 만큼, 중요한 것은 아시안컵이라는 말로 들렸다.
함께 자리한 코치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지금은 하나의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에 초점을 맞췄다.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는 "아시안컵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고, 김영민(마이클 김) 코치 역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긴 여정이 남았다. 수정해 나간다면 아시안컵에서 특별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도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아쉽지만,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아시안컵까지 가는 과정에서 많은 점을 보완하긴 해야 한다"라고 되돌아보며 "수비 조직력과 박스 안 마무리, 세트피스 수비 등 보완할 점을 논의하면서 1월 아시안컵을 준비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4경기를 치렀을 뿐인 데다가 이번 6월 A매치에서는 변수도 많았다. 주장 손흥민이 탈장 수술 여파로 제대로 뛰지 못했고, 수비의 핵심 김민재·김영권과 주전 미드필더 정우영은 아예 제외됐다. 그 결과 설영우와 박규현, 박용우, 안현범, 홍현석 5명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아시안컵이 매우 중요한 중간고사인 것도 맞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한국이지만, 마지막 우승은 6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만약 클린스만호가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쌓이고 있는 비판을 한 번에 털어낼 수 있다. 아시안컵을 생각한다면 A매치는 조금씩 맞춰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과정이라도 이정표는 필요하다. 김영민 코치 말대로 클린스만호에는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중간중간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없다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확고한 목적지와 방향이 있다면 과정 속에서도 어딜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클린스만호는 지금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지적받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명쾌한 진단과 구체적 설명 없이 원론적인 대답으로만 넘어간다면 불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부임한 지 4개월도 되지 않은 만큼, 선수단 파악과 문제점 진단이 덜 됐을 수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자진해서 기자회견을 연 만큼, 단순히 "투톱을 향해 롱킥을 보내길 원했다"라는 말보다는 그에 따른 어떤 플레이를 추구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왜 잘 안 됐는지를 들을 수 있길 기대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갈수록 잘될 것'이라는 반복되는 답만 듣고 싶었던 게 아니다.
이제 대표팀은 오는 9월 영국을 찾아 웨일스와 평가전을 치른다. 두 번째 대결 상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표팀 관계자는 북중미 국가 중에서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음에는 클린스만호가 어떤 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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