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 선수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의 후폭풍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마요르카)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가 지탄받는 것과 비교되는 상황이다.
울산은 지난 10일 홈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3 18라운드에서 제주유나이티드를 5-1로 격파했다. 이 경기에 선발 출전해 활약한 이명재는 경기 후 소셜 미디어에 게시물을 업로드했고, 팀 동료들이 댓글을 남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몇몇 선수들의 이명재의 외모를 동남아시아인에 빗대 놀린 것. 심지어는 과거 전북에서 뛰었던 태국 국가대표 수비수 사살락 하이프라콘의 실명까지 언급됐다. 팀 동료들끼리 나눈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한 인종차별 발언이다.
이규성은 "동남아시아 쿼터 든든하다"라는 댓글을 남겼고, 박용우는 "사살락 폼 미쳤다"라며 이명재를 사살락에 비유했다. 울산 팀 매니저 역시 "사살락 슈퍼태클"이라며 거들었다. 이명재는 "기가 막히네"라는 정승현의 칭찬에 "니 때문이야 아시아쿼터"라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이명재를 동남아 선수에 빗대며 놀린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 축구 팬들은 곧바로 인종차별적 행동을 꼬집으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명재의 소셜 미디어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한 태국 팬 역시 "모든 말과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이명재는 빠르게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고, 박용우는 12일 오전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어젯밤 소셜미디어에서 팀 동료의 플레이 스타일, 외양을 빗대어 말한 제 경솔한 언행으로 상처를 받았을 사살락 선수 그리고 모든 팬, 주변인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이어 박용우는 "선수 특징으로 별칭을 부르는 옳지 못한 언행으로 벌어진 이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언행에 신중을 가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용우는 "비록 인종차별이나 비하를 의도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지만, 제 부적절한 언행으로 상처를 받고 불쾌감을 느끼신 분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라고 고개 숙였다. 현재 "비록 인종차별이나 비하를 의도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지만"이라는 문구는 삭제된 상태다.
울산은 12일 구단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울산현대축구단은 이번 선수단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피해 당사자와 관계자 그리고 팬 여러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며 "빠른 시간 내에 사태 파악과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소속 인원 전원 대상 교육 등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울산은 "어젯밤(11일) 소셜미디어에서 울산현대축구단 소속 선수들과 스태프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라고 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사후 조치 계획을 밝혔다. 울산은 차별 근절 교육과 관계자들에게 사과, 상벌위원회 개최 등을 약속했다.
10경기 이상 출장정지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윤리강령'을 통해 "K리그의 모든 구성원은 인종 피부색 민족 국적 사회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이나 기타 의견 재산 출생 또는 기타 지위 성적 지향 기타 원인을 이유로 경멸적이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언동을 해서는 안되며 타인을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클럽에 대해 2000만 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선수 10경기 이상의 출장정지와 1000만 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박용우는 6월 A매치를 앞두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용우는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국가대표 주장인 손흥민이 그동안 프리미어리그 및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던 것을 기억하면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다.
손흥민은 올 시즌에만 수차례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월 6일 크리스탈 팰리스와 홈 경기서 손흥민은 후반 종료 직전 교체돼 벤치로 향했다.
이때 원정 서포터스석에서 손흥민을 향해 한 팬이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해위를 했다. 서양인에 비해 눈이 작은 동양인의 특성을 비하는 아시아계 차별의 두드러진 행위다.
토트넘은 즉각 성명문을 내고 경찰과 공조해 해당 행위자를 찾겠다고 선언했다. 크리스탈 팰리스도 강경 대응과 일벌백계를 다짐하며 제보를 요청했다.
또 손흥민에 대해 스카이스포츠 해설자 마틴 타일러는 지난 5월 1일 "손흥민이 무술(martial arts)을 했다"고 발언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동양인 비하로 해석될 여지가 큰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지난해 한 기자회견에서 "독일에서 뛰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프리메라리가 신성 이강인(마요르카)도 인종차별을 당했다. 마요르카 구단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이강인을 향해 "께 아세스 치노(어이 중국인, 뭐 해)?"라는 외침이 들렸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으로 추정했다. 치노(Chino)는 사전적으로는 중국인이라는 의미지만 스페인어권, 특히 중남미에서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울산 홍명보 감독이 축구계 큰 형 같은 모습을 보인 뒤 발생했다는 점이다.
홍명보 감독은 수원FC와 경기를 앞두고 수원종합운동장 장애인석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 "한국축구가 더 여러 가지 발전해야 한다. 장애인석을 한번 봐라.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저런 모습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권의 문제다"며 "인식이 개선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 가도 축구장에 저런 모습은 없다. 깜짝 놀랐다"며 축구계 전반의 각종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의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쉽게 내놓지 않았던 목소리였다. 그런데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해 축구대표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인지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울산 인종차별 논란이 공론화되고 기사화까지 되면서 클린스만 감독님 및 스태프 분들도 해당 사건을 아는 상황이다. 추후 징계 여부는 협회 차원에서 결정된 것은 일단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사살락이 몸담았던 전북은 구단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표명했다. 전북은 'NO ROOM FOR RASICM'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북현대모터스FC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라고 밝혔다. / 10bird@osen.co.kr
[사진] 울산 채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