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주최 측이 주변의 이목을 끌기 위해 발생시키는 무분별한 시위 소음으로 일반 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해외 국가 사례를 참고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 소음의 평균값을 단속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낸 후 일정 시간 소리를 줄여 평균값을 낮추는 식의 집회 주최 측 편법에는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인신공격성 비방 및 욕설 등 소음의 내용과 지속 시간 등은 사실상 규제조차 없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집회 소음으로 일상생활이 침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서는 소음 규정을 한 차례만 어겨도 곧바로 규제 대상이 되거나, 형법에 시위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소음 관련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갖추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회 시위에 관한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온 영국 등도 최근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일반 시민들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적절한 규제 도입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 美, 소음 규제 반복 위반 시 현장 체포… 日, 85데시벨 넘기면 즉시 제재
미국 뉴욕시는 집회 신고를 했더라도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경찰과 관할 지자체로부터 1일 단위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러 날에 걸쳐 시위가 이뤄질 경우 집회 신고는 최초 1회만 해도 가능한 반면, 확성기 사용에 필요한 소음허가(Sound Permit)는 매일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
뉴욕 경찰 당국은 소음허가 신청 시, 일 45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해 무분별한 확성기 사용을 막는다. 또한 전날 시위 소음과 인근 주민들의 불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음 날 소음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만일 허가 받지 않은 소음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 해당 기구의 압수 또는 벌금 부과 등의 제재도 가해질 수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와 같이 소음 관련 처벌 조항을 형법에 명기한 곳도 있다. 소음유발행위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과 구류 등 형벌을 부과하는 식이다.
워싱턴D.C.에서는 ‘소음규제법(District of Columbia Noise Control Act)’에 의해 상업 지역 기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데시벨을 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만약 위반 행위가 계속되면 시위자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대부분 지자체가 시위 현장으로부터 1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85데시벨을 초과하는 소음을 ‘폭력적 소음’을 의미하는 ‘폭(暴)소음’으로 규정해 원천 금지하고, 이를 1회만 어겨도 경찰이 즉시 규제에 나선다. 위반 상태가 지속되면 강제 퇴거와 자택 구금 등 규제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또한 85데시벨 이하의 허용된 소음이라 하더라도 가나가와현 등 일부 지자체는 확성기를 사용하는 경우 1회 10분간 시위 소음 유발 뒤 반드시 15분간 확성기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등의 강제 규정 도입으로 인근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고 있다.
시위 규제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오던 영국은 최근 ‘경찰, 범죄, 양형 및 법원에 관한 법률(PCSCA∙Police, Crime, Sentencing and Courts Act 2022)’을 제정해 시위 소음 규제를 새로 도입했다. 시위 소음이 주변 기관의 활동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인근 시민에 중대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개입할 수 있다. 위반 시, 징역형과 벌금형을 동시 부과할 수 있는 등 처벌 수위도 높다.
이밖에 ‘연방환경오염보호법’으로 시위 소음을 환경오염과 같은 선상에 놓고 구체적 허용 기준을 세분화한 독일과 신고 단계에서부터 인근 주민에 대한 소음 대책 제출을 의무화한 프랑스 등 해외 국가는 일찌감치 무분별한 시위 소음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국내, 시위 무관한 일반 시민 기본권 침해 심각… 집시법 개정 논의 ‘지지부진’
현행 집시법은 시위 참가자의 권리와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할 일반 시민들의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집시법에 따르면 10분간 측정한 평균 소음이 65데시벨(주거지역 기준)을 넘거나, 최고소음 기준인 85데시벨을 1시간 동안 세 차례 이상 넘기면 규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5분간 큰 소음을 낸 후 나머지 5분 동안 소리를 줄여 평균값을 낮추거나, 1시간에 두 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내는 등의 꼼수로 제재를 피하면서 집시법 규정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음의 지속 시간, 반복적 재생, 내용 등에 대한 집시법 상 규제는 전무하다.
집시법이 시위자들의 소음을 제재하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 일반 시민들은 집회에 따른 소음으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경찰청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74.6%는 ‘집회 소음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시민들과 함께 기업들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서울시내 기업 사옥 인근은 시위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한 대표적 현장이다. 여론에 민감한 기업을 상대로 모욕적이고 자극적 시위를 벌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인근에서 개인 A씨가 벌이는 시위가 대표적이다. A씨는 자신이 일하던 판매 대리점 대표(기아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사업자)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후 이와 무관한 기아 주식회사에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10년째 소음을 동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2년경에는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유동 인구가 많은 시간에 고성능 스피커를 동원해 장송곡을 틀고, 인격모독성 발언과 기업에 대한 비방을 일삼은 A씨에 대해 법원은 기업 측에 해고에 대한 책임이 없고, A씨의 표현 일부가 도를 넘어섰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A씨는 법원에서 지적한 일부 표현을 고치고 장송곡을 운동가요로 바꾸었을 뿐, 이후에도 기업 직원과 인근 시민을 볼모로 한 막무가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 소음에 따른 피해가 커지면서 시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서초구 SPC 사옥 부근 노조 시위에서 소음을 발생시키자 인근 주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현수막을 내걸고 항의했고, 하이트진로 사옥 인근 주민들은 소음 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21대 국회 들어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취지의 입법안이 모두 9건 발의되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을 면치 못하는 등 정치권 움직임은 더딘 상태다.
한 전문가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 등 주장을 펼칠 수단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장송곡, 운동가요 등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라며 “과도하고 반복적인 시위 소음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엄격히 제한할 수 있도록 집시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