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토요타의 플래그십인데, 저토록 파격적으로 변해도 괜찮은 겁니까?” “69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혁신’과 ‘도전’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크라운이 토요타자동차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토요타 최초의 양산형 모델로 1955년 탄생해 ‘16세대 진화’라는 토요타 헤리티지의 살아있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크라운이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마치 지난 시절의 영화를 모두 잊어버리라는 특명이라도 받은 듯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69년 역사의 원동력이 혁신과 도전이었다”는 토요타코리아 관계자의 말에 변신의 이유가 녹아 있다.
크라운을 비롯한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는 전동화라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그 물결 속에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배겨 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배경에 있다.
최근 국내 출시행사에서 토요타코리아의 이병진 상무는 16세대 크라운을 개발 비화를 들려줬다. “토요타에는 상품 개발 프로세스의 마지막 단계로 차량 개발을 승인하는 ‘상품화 최종회의’라는 게 있다. 16세대 크라운은 3년전 상품화 최종회의에서 토요타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 계획이 전면 중지되는 과정을 거쳤다. 완성 단계를 모두 접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지금의 모습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절실했던 이유가 있다. 시대의 가치가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타 엔지니어들은 “지금은 다음 세대 크라운을 생각할 때다. 전통적인 자동차의 모습이 세단이라는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며 크라운의 차세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일단 우리나라 시장에 출시된 크라운은 생김새부터가 파격이다. ‘토요타 세단 라인업의 플래그십’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크라운이 크로스오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한 박자 늦게 ‘크라운 세단’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 출시된 모델은 세단보다 차체가 높은 크로스오버다. 완성단계의 개발 계획을 뒤엎었다는 비화가 수긍이 갈 정도의 놀라운 변신이다. 보수적인 토요타가 이 정도의 파격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전장과 전폭, 전고가 4980x1840x1540mm다. 흔히 비교되고 있는 현대차의 그랜저가 5035x1880x1460mm이니 수치만 봐도 생김새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강원도 정선과 강릉을 오가는 미디어 시승코스에서 경험한 크라운도 차체의 특징이 강하게 어필됐다.
밖에서 보는 스탠스와 운전석에 앉아서 느끼는 스탠스가 자못 달랐다. 패트스백으로 매끈하게 빠진 바깥 실루엣은 차체가 높은 크로스오버라는 사실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그 느낌이 망각이라는 사실은 시트에 앉는 순간 강하게 몰려온다. 세단에 비해 전방 시야각이 확연히 시원하다.
정차 상태에서 다가왔던 크로스오버 느낌은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 혼란을 부른다. 분명 무게 중심이 높아졌을 터이지만 토요타 특유의 부드러운 주행성이 ‘그냥 세단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차도에서 나란히 달리는 주변 차량으로 눈길을 돌려 본다. 전통 세단 형태의 차들이 분명 내 시선 아래에 있다. 그래서 ‘크로스오버(혼합, 교차)’인가? 수시로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이 교차된다.
두 가지 종류의 파워트레인이 도입된 것도 꽤나 도전적인 시도다.
우리 나라 시장에 크라운은 연비 효율성을 극대화한 2.5리터 하이브리드(HEV)와 다이내믹한 주행성을 강조한 2.4리터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Dual Boost HEV), 두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출시됐다.
2.5리터 하이브리드는 토요타의 전통적인 하이브리드 세단 느낌을 그대로 계승했다. 순하고 부드러우며, 인증 복합연비가 17.2km/ℓ에 이를 정도로 효율적이다.
2.5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모터가 보조하는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신형 ‘바이폴라 니켈 메탈 배터리’를 만나 연료 효율성을 한층 더 높였다. 이 배터리는 배터리 셀 사이에 전류를 흐르게 하던 단자를 제거하고, 셀의 각 면 전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전류가 각 셀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전기의 내부 저항이 감소하고 한층 높은 속도로 전기가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부품수가 적어지면서 다운 사이징도 실현시켰다. 출력과 연비가 동시에 높아지는 효과를 얻어냈다.
이 모델만 봤다면 크라운의 ‘혁신’을 반만 이해하게 된다. 진짜는 2.4리터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에 있었다. 이 차는 토요타 최초로 2.4리터 터보 엔진이 하이브리드에 사용됐다. 그 동안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에 자연흡기 엔진을 써 왔다.
2.4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그 자체만으로 최고 272마력(6,000rpm)을 낸다. 여기에 모터 출력을 합친 시스템 출력은 무려 348마력이 된다. 이 정도 스펙이면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서킷에 올려도 무리 없이 내달릴 수 있다.
2.4리터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는 번갈아 시승한 2.5리터 하이브리드를 평범하게 만드는 뜻밖의 부작용(?)을 냈다. 2.5 하이브리도 시스템 총출력이 239마력에 이르기 때문에 모자람이 없지만, 왠지 엔진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2.4터보 하이브리드는 주행 모드도 여섯 개나 됐다. 에코, 컴포트, 노멀, 스포츠S, 스포츠 S+, 커스텀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보통은 ‘컴포트’와 ‘노멀’을 구분하지 않지만 크라운 2.4 터보는 그 미묘한 차이를 쪼개 ‘선택 모드’로 배려했다.
토요타 특유의 조심성에 지배당한 분야도 있다. 스포츠S와 스포츠S+까지 단계를 높여 ‘역동성’을 챙기긴 했지만 ‘터프’한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속도계는 순식간에 올라가지만 그 와중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가상 사운드라도 넣어 속도감을 더 느끼게 했으면 좋으련만, 토요타의 조심성은 그 단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판매 전략에서도 마찬가지다. 2.4터보 하이브리드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국내 시장에 100대 가량만 들여올 예정이다.
사륜구동을 관장하는 E-Four 시스템은 한층 더 진화했다. 2.4 터보에 장착된 ‘어드밴스드 E-Four 시스템’은 프론트 및 리어 구동력을 100:00에서 20:80까지 기민하게 조절하게 설계됐다. 후륜구동 차량에 가까운 안정적인 직진 주행성과 코너링이 주행에서 구현됐다.
비슷한 가격대의 현대차기아 차량에 비해 편의 사양이 부족한 건 크라운의 흠으로 지적될 만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크라운 2.5리터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5,670만원(개별소비세 3.5%), △크라운 2.4리터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는 6,480만원(개별소비세 3.5%)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