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대전환’ 시대에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새 판 짜기에 여념이 없다. 대개는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강화를 큰 축으로 미래 비전을 그린다.
재규어랜드로버도 미래 대비에 나선 지는 오래다. 치밀한 연구 끝에 미래 전략의 밑그림도 완성됐다. 그런데 그 판이 다른 브랜드들과 좀 다르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청사진은 ‘리이매진(Reimagine)’으로 정의된다. ‘새롭게 재해석하다’ ‘재구성하다’는 뜻을 지녔다. 지난 2021년 재규어랜드로버는 리이매진이라는 키워드에 ‘전동화’ ‘미래화’ 전략을 실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3년. 리이매진 전략은 한층 구체화 됐다. 2년 전 목표로 제시한, 2039년 탄소중립 달성에 이르는 길은 더욱 명료해졌다.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는 18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서울 호텔에서 새 판을 짜는 큰 그림을 발표했다.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의 한국 시장 전략은 이 판을 토대로 크게 용트림할 판이다. 이 또한 재규어랜드로버가 설정한 ‘리이매진’ 전략의 일환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재규어랜드로버 최고 사업 책임자 레너드 후르닉(Lennard Hoornik, JLR Chief Commercial Officer)도 참석해 한국에서 구체화될 리이매진 전략에 무게를 실었다. 후르닌 CCO는 “재규어 랜드로버는 2030년까지 재규어 랜드로버를 전기차 주도의 모던 럭셔리 자동차 회사로 포지셔닝하는 것을 목표로 리이매진 전략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며 “2025 회계연도까지 순 현금 흐름 흑자, 2026년까지 두 자릿수 영업이익(EBIT)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리이매진 전략 아래 향후 5년간 한화 약 25조 원(150억 파운드)을 투자해 2030년도까지 전기차 주도의 모던 럭셔리 브랜드로 전환할 계획이다.
영국에 있는 헤일우드(Halewood) 공장은 전기차 전용 제조 시설로 전환하고 2024년에는 모던 럭셔리 순수-전기 레인지로버가 공개된다. 순수-전기 파워트레인이 장착된 최초의 차세대 중형 모던 럭셔리 SUV가 될 이 모델은 공식 출시 시기는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 전동화 추세가 가속화됨에 따라 재규어랜드로버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전기화 모듈 아키텍처(Electrified Modular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랜드로버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내연기관(ICE), 하이브리드, 순수-전기(BEV) 옵션을 모두 포괄하는 레인지로버 및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MLA(Modular Longitudinal Architecture) 플랫폼은 유지한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순수전기차를 모두 생산해 낸다는 건 획기적이다. 이 것이 가능한 배경은 “MLA 플랫폼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세 가지 유형의 파워트레인을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고안됐기 때문”이라고 후르닌 CCO가 말했다.
재규어랜드로버 산하 브랜드 전략도 정립이 됐다.
현재 재규어랜드로버는 재규어와 랜드로버, 2개의 브랜드가 있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디펜더, 디스커버리라는 제품군을, 재규어는 XE, XF, XJ, F-타입, I-페이스, F-페이스 제품군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이 얼개가 크게 달라진다. 재규어랜드로버는 JLR이라는 기업명으로 통합되고 그 산하에 레인지로버, 디펜더, 디스커버리, 재규어가 각기 독립 브랜드로 존립한다. 랜드로버라는 이름은 트러스트(TRUST, 기업합동) 인증 마크 정도로 남는다.
브랜드 독립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아직은 같은 전시장을 쓰고, 랜드로버라는 공통의 배지를 달지만 독립 브랜드로서 고유한 개성을 확장해 나간다. 인력 구조도 각 브랜드에 맞춰 순차적으로 재편된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이 전략을 ‘하우스 오브 브랜드’라 칭했다. JLR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4개의 독립 브랜드가 일가를 이뤄 각자의 개성을 추구해 나간다.
이렇게 되면 재규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절하되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랜드로버의 모델이었던 ‘레인지로버’가 재규어와 동등한 지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대신 재규어는 ‘환골탈태’를 택했다. ‘아름다운 스포츠 세단’ 대표주자로 군림하던 과거의 영화를 버리고 순수 전기차 전용 브랜드로 탈바꿈한다. 이미 이 작업은 수년전부터 진행돼 왔고, 그 결과물이 2025년이면 양산차로 등장한다.
첫 번째 작품은 세부 내용까지 공개됐다.
2025년 공개될 모던 럭셔리 전기 재규어 3종 중 첫 번째 모델은 독자적인 JEA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4도어 GT 전기차다. 주행 가능 거리는 최대 700km, 가격은 약 1억 5,000만원(10만 파운드) 대로 책정됐다.
이 차량을 미리 봤다는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의 한 인사는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재규어랜드로버가 지향하든 모던 럭셔리 디자인의 정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차의 실루엣은 18일의 기자간담회에서 티저 이미지로 한 커트 공개됐다. 차량 후미의 실루엣인데 미래지향적 이미지가 파격적이다.
이처럼 재규어는 2025년부터 선구적인 차세대 기술과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순수 전기차 모던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한다.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는 새로운 재규어를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2023년 하반기부터 재규어 리테일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2025년, 르네상스의 도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재규어는 판매 방식도 달라진다. 기존의 딜러 체제를 깨고 직접 판매를 시도한다.
리이매진 전략에 따라 재규어는 한국 시장에서 디자인, 기술, 서비스를 통한 최고의 모던 럭셔리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직접 판매(Direct-to-Customer)’ 에이전시 모델로 전환한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의 로빈 콜건 대표도 리이매진 글로벌 전략에 따라 바빠졌다.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모던 럭셔리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2025년부터 재규어 전 모델에 순수-전기 파워트레인을 탑재하고 랜드로버는 2030년까지 전체 판매 차량 중 60%에 순수-전기 파워트레인을 장착하겠다는 글로벌 정책에 발맞춰 한국 시장에서도 전동화 파워트레인 라인업을 확장한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는 올해 말 주행 거리가 향상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레인지로버 벨라를 출시할 계획이다.
랜드로버의 3.0L I6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과 강력한 160kW 전기 모터, 38.2kWh 배터리가 결합된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P550e PHEV 모델은 100km 이상(WLTP 기준) 탄소 배출 없이 주행이 가능하다. 전체 주행 가능 거리의 약 75%를 순수-전기모드로만 운행할 수 있으며, 50kW DC 급속 충전을 통해 1시간 이내에 배터리를 약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2024년 순수-전기 레인지로버를 시작으로, 2025년 최초로 EMA 플랫폼을 탑재한 레인지로버 제품군 전기차를 공개한 후 잇달아 디펜더 및 디스커버리 브랜드의 전동화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내년 초에 모던 럭셔리 순수-전기 레인지로버의 사전 예약을 시작한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