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때는 하루 네 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7년 발간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쓴 내용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미래를 위해 충언을 내놓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베스트바이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삼성 TV를 보고 이 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이건희 회장은 사내방송국이 제작한 영상물을 보고 격노했다. 세탁기 생산라인에서 촬영된 영상에는 세탁기 뚜껑이 몸체와 맞지 않자 한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칼로 뚜껑 테두리를 잘라내 조립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칼을 뽑아 들었다. 이건희 회장은 그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구호와 함께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수원 삼성은 12위다. 2등은 고사하고 K리그 1 꼴찌다. 지난 시즌 천신만고 끝에 승강 플레이오프서 살아 남았지만 변한 것이 없었다.
수원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3 12라운드서 전북 현대에 0-3으로 완패했다. 이날 패배로 수원은 1승 2무 9패로 최악의 성적을 이어갔다.
김병수 감독의 옷을 입었지만 변한 것이 없었다. 자존심도 부족했다. 그동안 힘겹게 싸웠던 감독을 내친 수원이지만 결국 패배가 이어졌다. 직전 11라운드서 인천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당시에는 수원이 자랑하는 '리얼블루'의 효과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탈 리얼블루'를 외치고 나선 전북과 경기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0-3 패배는 당연한 결과였다. 7개의 슈팅을 시도한 수원은 유효슈팅이 1개에 불과했다. 14%였다. 전북은 18개의 슈팅을 시도했고 7개가 유효슈팅이었다. 39%를 기록한 전북은 3골을 기록했다.
일등을 추구하는 모기업 삼성의 모습과 수원은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새로운 감독이 부임했지만 경기력은 최악이었다. 결국 커뮤니티에는 수원에 대한 성토의 글이 끊이지 않았다. 감독 교체로 갑작스럽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함께 구단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결국 전 감독과 감독대행만이 책임을 졌다.
수원은 이건희 회장처럼 칼을 뽑아 들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과 뿐만 아니라 경기력 자체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자"는 이야기는 수원에 해당되지 않았다. 감독만 교체했을 뿐 큰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11경기만에 승리를 거두고 다시 패한 수원의 2번째 승리는 여전히 요원하다. / 10bird@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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