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집행부 중 7명이 유임하지만, 대한축구협회(KFA) 정몽규 회장은 ‘환골탈태’를 외쳤다. 축구 현장을 가까이 한 적 없는 '비경기인 출신' 신임 상근 부회장 김정배 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차관(57)이 막중한 임무를 떠안았다. 그는 이번 '집행부 개혁' 중심인물이다.
정몽규 KFA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이사진 25명을 발표했다.
기존 이사진은 지난달 4일 KFA가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의 ‘기습 사면’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데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직함을 모두 내려놓았다. 사면 대상자엔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사진 총사퇴’ 사태 후 약 한 달 만에 KFA가 ‘새판’을 짠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간 경기인이 주로 맡았던 전무이사직을 폐지하고 상근 부회장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행정 전문가로 하여금 내부 조직을 하루빨리 추스려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영입함으로써 축구계 안팎의 목소리를 폭넓게 경청하는 것에 큰 목표를 뒀다. 이사회가 축구계 인사들만이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확장형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경북 포항 출신인 김 신임 부회장은 행정고시 합격 후 문체부 국제체육과장을 거쳐 2차관을 역임했다. '축구계 실무'보단 전반적인 체육 행정 업무 경험이 많은 인물이다.
‘비경기인 출신’ 상근 부회장 제도에 엇갈린 시선이 따른다.
통상적으로 전무이사직은 전 국가대표 출신 경기인이 맡으며 엘리트 축구인과 KFA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쌍방 소통'보단 선수 출신의 민원 창구로 변질되는, 팔이 안으로 굽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으나 '경기인 출신' 전무이사들을 통해 그동안 KFA는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 직접적, 그리고 기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경기인 출신이 아닌 김 신임 부회장이 앞으로 협회 실무 행정을 총괄하면서 팔이 ‘현장’ 안으로 굽을 일은 과거보다 적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전반적인 한국 체육 행정 실무 전문가라 할지라도 30년 넘도록 축구 현장과 동떨어져 있던 그가 냉정히 곧바로 KFA 실무에 투입될 수 있을진 의문이다. 정 회장은 "부회장과 분과위원장에 축구인 출신이 많이 있다. 김정배 상근 부회장과 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말한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선 김 신임 부회장이 해박한 축구 현장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축구인 출신 임원들과 매끄러운 소통이 가능하다. 전임 '경기인 출신' 전무이사들과 달리 행정가의 길만 걸어왔던 그가 과연 현장의 목소리를 잘 이해함과 동시에 잘못된 목소리를 거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이사진의 임기는 약 1년 7개월이 남아 있다. 전 집행부 총사퇴가 낳은 ‘행정 마비’를 신속하게 지우고자 하는 KFA의 방향과는 썩 맞지 않는 김 신임 부회장의 영입일 수 있단 것이다.
KFA는 기존 이사진 7명의 유임으로 일단 ‘행정 마비’에서 빠르게 벗어나겠단 계산이다. 정 회장은 “몇몇 부회장은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유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잊히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들은 ‘사면 사태’를 막지 못했다. 정작 ‘행정 마비’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연속성 임무’를 부여받은 그들로 하여금 KFA가 바닥에 떨어진 신뢰와 멈춰버린 행정이 빠르게 제 자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는 사치다.
김 신임 부회장이 KFA에 얼마나 빠르게 녹아드느냐가 이번 협회 인사 개혁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중요할 때 ‘인사 쇄신’ 중심에 선 김 신임 부회장은 “30여 년간 문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잘 쓰이도록 열심히 하겠다. 각 분야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축구를 오래 즐겼다.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협회의 제안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신명나게 일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과제도 줬다. 그는 "협회의 역할 확장을 위해 'K리그 승강제'와 '스포츠 산업'을 결합해 보겠다”고 했다. 현재 1, 2부로 구성된 한국 축구 승강제를 2033년까지 7부로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문체부 등 유관 기관과 협력해 스포츠 산업과 동반 성장을 일구겠다고 다짐했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