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제조사는 기기를 구동하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만 탑재된 하드웨어를 판매한다.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유료 또는 무료로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이용한다. 스마트폰에서 익숙한 서비스 판/구매 방식이 자동차에도 도입된다.
기아가 신품종 전기차 EV9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부 기능의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다. 사용자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지불한 돈과는 별개의 구매비용을 내고 특정 기능을 사용하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능'이라기 보다는 '서비스'에 가깝다. 자동차를 구동하는 계통과 안전과 직결된 기능은 추가 판매 품목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판매 금액도 몇 십만 원 수준이다.
기아는 이 서비스를 FoD(Features on Demand)라고 이름 붙였다. 일부 서비스를 별도 판매 품목으로 배치하는 것은 아직은 실험적 단계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매우 중요한 걸음마다. 기아가 천명한 소프트웨어 회사, 즉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로 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6월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EV9에 FoD 방식으로 판매되는 품목은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라이팅 패턴, 스트리밍 플러스 등 3개다. 개성을 표현하기 좋은 서비스들이다.
아직은 신개념이라 소비자들에게 개념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기아는 전용 체험관인 서울 성수동 ‘기아 EV 언플러그드 그라운드’에 SDV 기술 체험 테마관을 꾸몄다. 필요한 서비스를 FoD로 다운받고, 차에 설치해 즐기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체험관은 4일부터 관람객을 받는다. 관람을 원하는 이들은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한 후 전시관에 입장할 수 있다.
EV9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기반한 기아의 두 번째 플래그십 전동화 SUV다. 동시에 SDV가 종합적으로 실현되는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SDV의 부분적 시도는 이미 다른 차에서 실현되고 있다. 고속도로 부분 자율주행(HDP, Highway Driving Pilot), 기아 커넥트 스토어(Kia Connect Store), 무선(OTA, 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이 SDV로 접어든 방증들이다. 여기에 ‘FoD(Features on Demand)’ 서비스까지 실리면 사실상 SDV의 종합판이 된다.
‘기아 커넥트 스토어’에서 운영되는 EV9의 FoD 상품은 ▲원격 주차/출차 및 주차 보조를 지원하는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에 5가지 그래픽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라이팅 패턴’ ▲차량에서 영상 및 고음질 음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 플러스’이다.
상품 판매는 기아 커넥트 스토어 인터넷 홈페이지 또는 스마트폰 전용 어플리케이션 ‘마이 기아(My Kia)’에서 이뤄진다. 기본적으론 평생 이용 방식이지만, 상품을 구매할 때는 기간도 선택할 수 있다. 기간이 설정되면 중고차로 팔 때 구매한 서비스의 승계 문제로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리스, 렌트, 중고차 판매 등을 고려한 상품 구성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EV9 구매자가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상품을 평생 이용하고자 할 경우 50만 원에 구매할 수 있다. 월간(1만 2,000원), 연간(12만 원) 상품으로 기간을 한정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주문 취소도 가능하다.
SDV는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EV9에서의 실험은 그룹 모빌리티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SDV 체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확장될 다양한 소프트웨어 상품을 FoD 서비스 형태로 선보일 수 있다. 소비자는 기본적인 기기(차)만 사고, 다양한 서비스는 별도의 소프트웨어 구매로 누리는 시대가 문이 열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SDV 개발 비전을 밝히는 ‘소프트웨어로 모빌리티의 미래를 열다(Unlock the Software Age)’ 행사를 열고, 차량을 구입한 이후에도 성능과 기능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SDV 비전을 공개한 바 있다.
EV9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적용 범위는 기존 핵심부품 뿐만 아니라 주요 편의기능까지 대폭 확대돼 SDV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갖추게 됐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대상 제어기가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편의 사양을 최신화 할 수 있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차량에 별도의 장비를 연결하지 않더라도 클라우드 서버와 차량간 무선통신으로 제어기 소프트웨어를 최신화 하는 기능이다.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이미 적용된 기능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제네시스 GV60를 통해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처음 실시한 이후, 현재까지 6개 차종에서 약 25회에 걸쳐 상품성 개선, 캠페인 등을 무선 업데이트로 진행했다. 별도의 조작 없이 주차 중 3~10분만에 진행된다는 장점 때문에 업데이트 배포 이후 한 달여 만에 평균 95%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등 높은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 내비게이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제외)
현대차그룹은 SDV 전략에 따라 기능 집중형 아키텍처(Domain Centralized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차량 제어기를 4가지 기능 영역으로 각각 통합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제어기의 수가 크게 줄어들어 차량 기능과 성능 업그레이드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된다.
수많은 제어기를 통합한 결과 EV9은 단일화된 제어 소프트웨어 시스템 버전을 갖추게 됐으며, 이를 통해 구매자에게 FoD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확보했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은 궁극적으로 고객이 개인화된 차량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FoD 서비스를 지속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사양 위주로 FoD 상품을 구성하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상품을 직접 조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