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
팬들의 분노가 담긴 걸개를 본 수원삼성 '플레잉 코치' 염기훈(40)이 한 말이다. 그는 올 시즌 첫 선발 출격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승리는 따내지 못했다.
수원은 30일 오후 4시 30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3 10라운드 맞대결에서 0-1로 패했다.
이날 결과로 대구는 3승4무3패, 승점 13을 기록하며 한 경기 덜 치른 수원FC(승점 12)를 끌어내리고 일단 7위로 한 단계 올라섰다. 수원은 무승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개막 후 2무 8패, 승점 2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최하위(12위)에 머물렀다.
최성용 대행이 임시 지휘봉을 잡은 뒤 치른 3경기에서 수원은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수원은 지난 17일 이병근 감독을 경질하고 최 대행 체제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최 대행은 경기 후 "이런 결과가 나와 이 앞에(기자회견) 서기조차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지금 너무 힘들다. 저보다 선수들이 훨씬 힘들 것이다. 앞으로 경기가 남아 있다.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은 홈에서 만큼은 승리하기 위해 이날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플레잉 코치'로 수원에 몸담고 있는 염기훈을 깜짝 선발로 기용한 것.
경기 전 "동계훈련 때부터 (염)기훈이가 훈련에서 빠진 적이 없다. 충분한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좋은 컨디션으로 보여 오늘 기용하기로 했다. 또 (김)보경이는 많은 경기 뛰었기에 이번엔 기훈이한테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날 염기훈은 측면에서 공격 활로를 만들긴 했으나 공격 포인트는 올리지 못했다. 냉정히 그의 번뜩임은 전반전에 국한돼 있었다. ‘왼발의 마법사’인 그는 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예상 밖 오른발 슈팅을 날리기도 했으나 골과 연이 닿지 않았다.
수원의 시즌 첫승은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수원 팬들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었다.
이날 수원 응원석엔 ‘밑바닥 성적은 밑바닥 운영탓’, ‘야망이 없는 프런트, 코치, 선수는 당장 나가라. 수원은 언제나 삼류를 거부한다’, ‘지지자는 소통을 원한다’는 걸개가 나부꼈다. 팬들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염기훈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팬들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했다.
'걸개를 봤는지' 질문에 그는 "첫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 팬분들한테 입이 열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없다. 제가 팬이었어도 분노할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걸개를 봤을 때 위축되는 부분이 사실 있긴 하다. 팬들의 환호를 받고 경기장에 입장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상당히 다르다. 경기 시작 전부터 팬분들이 화나 있는 모습을 보면 위축되곤 한다. 그러나 그건 우리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 "솔직히 (강등 싸움하던) 작년이 제일 힘들 줄 알았다. 그러나 올해 작년보다 더 힘든 부분이 있다. 저도 힘들지만 후배들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려고 저도 좋은 얘기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염기훈은 수원이 좋지 못한 상황임에도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고마움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오늘 팬분들이 많이 안 오실 줄 알았다. (직전까지) 2무 7패였기 때문에 '팬분들이 오늘은 많이 안 오시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경기장 입장했을 때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와주셨다. 염치 불고하고 그게 그라운드에 나설 때 저한테는 힘이 됐다. 선수들은 팬분들의 함성 소리에 더 좋아지고 한 발씩 더 뛰게 된다. 앞으로도 이렇게 경기장에 오셔서 혼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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