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팬 분들, 선수 출신들까지 제 우승을 예상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에요. 프로포즈는 그래서 생각한 거에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내면 그 만큼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해서요. 사실 포기하기 싫었죠. 설거지만 하다가 도망간것 처럼 됐는데, 또 도망가는 것 처럼 보일까 이를 악물고 했어요. 두 번 실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ASL 사상 네 번째 테란 우승자가 탄생했다. 과거 프로리그 시절을 고려하면 전혀 새로운 얼굴이다. 임홍규의 활약에 큰 자극을 얻어 다시 한 번 도전을 선택한 정영재가 11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우승컵을 높이 들어오렸다.
정영재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 지하 1층 'ASL 시즌15' 박성균과 결승전서 과감한 판단과 귀신같은 타이밍 러시로 교전의 달인인 박성균을 4-1로 완파하고, 생애 첫 개인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울러 ASL 사상 5번째 테란 우승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정영재는 우승컵과 함께 상금 3000만원을 받았다. 역대 ASL 테란 우승자는 이영호(4회)·김성현(1회)·이재호(1회)·김지성(1회) 4명이다.
경기 후 우승 인터뷰에 나선 정영재는 “아직 꿈만 같다. 누가 나를 한대 때려줘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활짝 웃으면서 “재밌는 사실 하나가 이번 시즌 승자 예측 반대 쪽이 무조건 이겼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예상이) 열세라는 걸 시작전에 보고 ‘오늘 우승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왔다. 여기에 역대 결승전을 살펴보면 1세트 승리자 전부 우승 이었다. 1세트 승리 이후 전 시즌 우승자인 지성이가 ‘무조건 이겼다’는 말을 해줘서 더 자신감이 생겼다. 마인드 콘트롤 하면서 자신있게 결승에 임했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덧붙여 그는 “1세트를 끝나고 리플레이를 보는데, 나는 팩토리 더블 이었고, (박)성균이형은 배럭 더블이었는데 자원 상황이 내가 더 좋았다. 일꾼 숫자나 자원 회전율에서 원래 그럴수가 없다. 그걸 보고 더욱 우승을 예감했다. 길게 경기를 끌고가면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상황에 맞춰 즉흥적인 플레이도 많이 꺼냈다”고 우승을 예감했던 순간에 대해 설명했다.
정영재 우승의 숨은 조력자는 정명훈 전 리브 샌박 챌린저스팀 감독. 리브 샌박과 계약 종료 이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던 정명훈은 정영재의 도움을 흔쾌히 응하면서 한달음에 상경을 선택했다.
“(정)명훈이형이 부산에 거주 중인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응했다. 4일간 하루도 안 빠지고, 내 경기를 지켜보고, 피드백 해주었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테란 동족전 승률이 좋지 못한데, 세세한 디테일까지 잡아줬다. 또 (이)재호형도 경기 전날 세세하게 알려줘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영재는 이번 대회에 생애 첫 4강과 결승, 우승까지 이전 행보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를 남겼다. 그에 대해 정영재는 ‘운이 좋았다’고 웃으면서 다른 조력자로 준우승에 머문 박성균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강한 상대였던 도재욱의 탈락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는 4강만 가도 ‘진짜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4강을 가니, ‘할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승에 오니까 더 ‘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이기지 못하는 (도)재욱이형이 떨어지고, ‘더 할만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까다롭게 생각했던 상대를 떨어뜨린 (박)성균이형의 힘이 크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가장 힘들었던 경기를 묻자 2세트를 꼽은 정영재는 “연습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맵이 2세트였다. 그래서 너무 불안하기는 했다. 막상 경기도 이상하게 흘러가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어떻게 졌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면서 “이후 사소한 심리전을 가미했다. 3세트에서는 애드온 탱크를 준비했고, 2세트에서는 벌처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렇게 해봤지만, 상대가 눈치를 빨리채고 바로 달려나왔다.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교전을 택했는데, 이득을 많이 보면서 불리하게 출발해도 따라갈 수 있었다. 5, 6세트 빌드는 정하지 않았었다. 앞선 1, 2, 3, 4세트를 바탕 삼아 하고 싶은 전략을 택하려고 했다. (박)성균이형이 안전하게 1, 2, 3, 4세트를 다 똑같이 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이기려면 이겨봐’라는 마인드로 그냥 질렀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다음 대회 목표를 묻자 그는 “다음 시즌은 8강만 가도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지난 대회 우승자인 (김)지성이가 한 번 우승을 하고 나니 동기부여 약간 사라진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 역시 새로운 동기부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시즌은 프로포즈까지 했는데, 그건 일반적으로 내가 ‘우승하는게 말도 안되는 상황’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우승하면 프로포즈 할게 장난쳤던 게 여기까지 와서 프로포즈로 이어졌다. 프로포즈를 받아준 여자 친구에게 고맙다”고 활짝 웃었다.
끝으로 정영재는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시작했을 때 사람들과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근데 여기서 뭔가 다시 도망가기에는 설거지에서 망했다가 그대로 또 도망가는 것처럼 될까 봐 이 악 물고 진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두 번 다 실패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다음 시즌도 우승자에 걸맞는 책임감있는 경기로 보답하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