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8일(이하 현지 일자), 손흥민(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엘링 홀란(23·맨체스터 시티)에게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를 호령하는 두 걸출한 골잡이는 나란히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한국인의 자랑’ 손흥민은 EPL 통산 100골 고지에 비로소 올라섰다. EPL 사상 서른네 번째 세 자릿수 클럽에 발길을 들여놓은 쾌거다. 물론, 아시아인으로선 최초다.
통산 득점 순위에선, 손흥민은 사우샘프턴에서 활약하며 100골을 기록(1992-1993~2001-2002시즌)한 맷 르티시에와 함께 33위다. 2015-2016시즌 EPL에 뛰어들어 8시즌째에 가입함으로써 10시즌 만에 달성한 르티시에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의 골 사냥 솜씨를 보였다. 이번 시즌 안에 르티시에를 넘어섬은 기정사실이라 할 수 있다.
사우샘프턴전에서, 2골을 뽑아낸 홀란은 통산 200골 고지에 올라섰다. 2015년 노르웨이 브뤼네 FK 2에서 프로에 데뷔한 지 9년째에 이룬 호기록이다.
‘괴물’ 홀란은 EPL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 경신을 눈앞에 뒀다. 2022-2023시즌을 맞이하며 EPL에 입문한 신예답지 않게 30골로 득점 선두를 질주하며 연부역강의 골 폭발력을 뽐내고 있다. 이 부문 기록은 앤디 콜(뉴캐슬 유나이티드·이하 당시)과 앨런 시어러(블랙번)가 세운 34골이다. 42경기 체제하에서 세워진 이 기록에 비해, 38경기 시스템에서 기록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가 지닌 32골이다.
홀란, 닷새 차로 21세기 최연소 200골 고지 등정 기록 놓쳐
손흥민과 홀란은 마음고생과 부상의 시련을 딛고 새로운 도표(道標)를 세움으로써 더욱 뜻깊은 일전을 치렀다. 손흥민은 28일 만에 마의 ‘99골’에서 헤어났다. 지난 3월 11일 노팅엄 포리스트전(3-1 승)에서 추가 쐐기골을 터뜨린 뒤 EPL 무대에서 골 연기를 펼치지 못한 바 있다. 홀란은 부상으로 3월 18일 FA컵 번리전을 끝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번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어 부상 공백을 아쉬워했을 법하다.
홀란은 비록 21일 만에 재가동하긴 했어도, 더욱 아쉬움을 곱씹을 만한 부상이었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대기록 수립을 눈앞에서 놓쳤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다. 단 닷새 차이로, 21세기 최연소 200골 고지 등정 신기록 수립의 야망이 좌절됐다.
2000년 7월 21일생인 홀란은 22세 261일 만에 통산 200골 고지 금자탑을 세웠다. 금세기 브라질을 대표하는 골잡이인 네이마르(31·파리 생제르맹)가 세운 22세 256일보다 불과 5일밖에 뒤지지 않는다. 네이마르는 스페인 라리가의 명문 바르셀로나에 몸담았던 시절인 2014년 10월 18일 에이바르전(3-0 승)에서 21세기 최연소 200골 등정 기록을 세웠다(표 참조).
홀란이 얼마나 놀라운 기세로 골을 사냥하고 있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 있다. ‘축구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리오넬 메시(36·레알 마드리드)와 대비해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메시는 24세 54일이 되는 2011년 8월 17일 ‘엘 클라시코’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통산 200골 고지에 발걸음을 옮겼다. 또 있다. 2020년대 세계 골잡이 판도를 함께 이끌어 갈 맞수 킬리안 음바페(25·파리 생제르맹)보다도 빨리 이 경지에 들어섰다. 음바페의 기록은 23세 14일이다.
통산 200골 고지 등정 기록을 20세기까지로 외연을 넓히면, 이제는 고인이 된 펠레(브라질·산투스)가 앉아 있다. 1960년 8월 10일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무대에서, 노로에스티를 상대(4-1 승)로 전인미답의 신기원을 이룬 펠레다. 그때 나이는 19세 292일로, 이제껏 20세 이전에 200골 고지를 밟은 단 하나의 존재다.
부상 기간에, 홀란은 3경기(A매치 2-EPL 1)에 나서지 못했다. 다치기 전에, 2경기에서 8골의 엄청난 기세로 불타올랐던 홀란의 골 폭발력을 감안하면, 실로 아깝게 놓친 대기록이다.
그러나 홀란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워 다소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EPL 데뷔 시즌에 최다 득점 기록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1999-2000시즌 EPL에 첫 모습을 나타낸 케빈 필립스(선덜랜드)와 함께 최다골(30·38경기 체제 기준)을 뽑아냈다.
이 부문에서도, 홀란이 새로운 지평을 열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 홀란은 EPL 9경기를 비롯해 많은 경기를 남겨 놓아 신기록 창출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역시 홀란은 이번 시즌 EPL의 최대 화두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