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이하 KFA) 부회장단과 이사진 전원이 ‘징계 축구인 100명 기습사면 사태’ 책임을 통감하며 일괄 사퇴했다. 정작 더욱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는 정몽규 KFA 회장은 여전히 사과문 한 장을 방패로 삼고 있다.
KFA는 4일 "부회장단과 이사진 전원이 금일 오후 일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며 "이들이 조만간 정식 사퇴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회 정관에 따라 선임된 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면 수용 여부에 상관없이 사임한 것으로 간주된다.
박경훈 KFA 전무이사는 “협회 실무 행정을 총괄하고 있는 전무로서 현 상황(기습 사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했다"며 "(사면 조치 철회가 있었던) 지난 금요일(3월 31일) 임시 이사회 이후부터 다수의 이사분들이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이번 징계 사면 사태에 대해 부회장단과 이사진 모두 큰 책임을 느끼고 오늘(4일) 전원이 사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앞서 전날(3일) 밤 '선수 출신' KFA의 이영표-이동국 부회장과 조원희 사회공헌위원장은 각자 성명을 통해 임원직 사퇴 의사를 먼저 밝혔다. 여기에 나머지 부회장들과 이사진도 뜻을 같이 했다.
박경훈 전무이사의 말처럼 이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내려온 이유는 최근 KFA가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의 ‘기습 사면’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데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앞서 KFA는 최근 단행한 축구인 사면 조치와 관련해 반발 여론이 극대화되자 지난 달 31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안건을 재심의, 사면 조치를 철회했다. 사면 대상자엔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었다.
KFA는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자축 및 축구계 대통합’을 사면 명분으로 내세운 데 이어 사면 발표를 지난 달 28일 한국과 우루과이전 킥오프 약 한 시간 전 기습적으로 해 비난을 자초했다.
결국 3일 만에 KFA는 정몽규 회장의 사과문 낭독으로 입장 번복을 알렸다. 그러나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인 통보 방식으로 ‘사면 사태’를 무마시키려는 움직임에 KFA를 향한 비난은 극에 달했다. 정몽규 회장이 일을 더 키운 것이다.
특히 축구선수 출신 KFA 인사들에게 팬들은 배신감과 허탈함을 크게 느꼈다. 정작 나서야 할 때 침묵했단 이유에서다. 이를 의식한 전직 국가대표 이영표-이동국-조원희는 동시에 직함을 내려놓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 이영표는 “있어야 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동국은 “경기인 출신으로 (사면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원희도 “축구를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역량 부족을 절실히 느껴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사면 사태'를 막지 못한 데 어느 정도 지분은 분명히 있다. 수직적 구조가 뚜렷한 KFA라 할지라도 축구선수 출신으로서 이번 사면에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했다. 이미 내부적으로 사면 결정이 나 어리둥절한 상황 속 마음에도 없는 편승을 한 것이라면 사면 결정 발표가 난 직후라도 정당한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결국 사퇴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에 등떠밀려 한 결정이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심지어 사면 대상엔 과거 프로축구를 나락으로 내몰았던 승부조작범도 포함돼 있었기에 국가대표까지 했던 이들의 침묵은 이번 사퇴로 그 책임을 다 지우지 못한다.
'젊은 임원'들의 사퇴는 신호탄이 됐다. 직접 실무를 지휘했던, 한 계단 더 높은 고위급 간부들도 줄줄이 불명예스럽게 KFA를 떠난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 점 부끄러움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은 KFA 보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할 정몽규 회장은 여전히 사과문을 방패로 삼고 있다.
프로스포츠 연맹이나 단체에서 ‘대형 사고’가 나면 수장이 사의를 표명하곤 한다.
지난 2022년 2월 한국야구위원회(KBO) 정지택 총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야구계 운영이 어려워진 것을 막지 못하고 2021년 도쿄올림픽 저조한 성적(4위)으로 팬들의 실망과 공분을 초래했다며 취임한 지 1년 1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산중공업 부회장 출신이었던 정지택 총재가 공정성 논란 속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까지 일으켰다는 의혹을 받자 자진 사퇴했단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스포츠 근간을 흔드는' 더한 일을 저지른 정몽규 회장은 허리 숙여 한 사과 한 번으로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하고 있다.
2013년 회장 취임 이후 2016년 재선, 2021년 3선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은 이번 ‘사면 사태’가 축구 팬들의 분노를 들끓게 할 것이란 걸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최전방에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한국 축구계 수장으로서 명백한 과오를 저지른 정몽규 회장은 적어도 사과문 뒤로 숨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움과 초라함도 사치일 지경엔 이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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