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변명 사과문' 한 장?... '기습사면 사태' 책임지는 사람 왜 없나
OSEN 노진주 기자
발행 2023.03.31 19: 32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달랑 사과 입장문 한 장이 다였다. 희대의 '헛발질'을 해놓고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없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최근 단행한 축구인 100명 사면 조치와 관련해 반발 여론이 극대화되자 31일 오후 4시 축구회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안건을 재심의, 사면 조치를 철회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지난 28일 KFA는 이사회를 열고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2023.03.31 /ksl0919@osen.co.kr

사면 대상자는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는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으로, 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면 조치를 발표하면서 KFA는 “지난해 달성한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며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을 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도 있다”고 밝혔다.
KFA의 뜬금 징계자 사면 조치 발표에 축구계가 분노로 들끓었다. 축구계 대통합을 위해 징계 축구인을 사면한다는 건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그들을 축구계에서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KFA는 29일 추가 입장문까지 내면서 사면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심지어 “한국축구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다시 한 번 주기로 한 결정했다”며 팬들에게 이해까지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면 대상자 전체 명단은 철저히 숨겼다.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곧 징계 혐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되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며 징계자들을 오히려 감싸고돌았다.
2023.03.28 /jpnews@osen.co.kr
KFA의 이러한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 축구에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2022카타르월드컵 16강 성과가 주효했다. 한 동안 찬바람 불었던 프로축구가 ‘턴 어라운드’를 맞이할 정도였다.
국가대표 친선전 경기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24일 콜롬비아, 28일 우루과이전 전석이 매진됐을 뿐만 아니라, 경기 전후로 축구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팬들이 구름떼를 이뤘다.
다시 안 올 수도 있는 훈풍이 축구계에 불었는데 KFA가 기습 사면 조치로 대차게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사태로 팬들은 KFA의 바닥을 봤다. 현역 은퇴 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축구인들이 포함된 이사회에서 나온 결정이 고작 과거 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들었던 징계자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것인데, 이보다 더 바닥일 수 없다.
결국 정몽규 회장도 고개를 숙였다. 31일 사면 철회를 발표하면서 "사려 깊지 못한 판단이었다"며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축구인과 팬들이 받았던 그 엄청난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달랑’ 입장문 한 장이 다였다. 
입장문 한 장으로 정몽규 회장은 팬들과 과거 승부조작 당시 피해 본 선수와 구단의 분노, 그리고 스스로 과오를 누그러트리려 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심지어 ‘변명 섞인 입장문’이다.
정몽규 회장은 “2년여 전부터 ‘10년 이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충분히 반성을 했고, 죗값을 어느 정도는 치렀으니 이제는 관용을 베푸는 게 어떻겠느냐’는 일선 축구인들의 건의를 계속 받았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며 자신도 처음엔 반대 의견이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사면 조치를 의결한 장본인이다. 여쭙잖은 변명 끼워넣기다.
정몽규 회장은 한국 축구계 수장이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사리분별 하지 못하는 결정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했다. 책임지는 사람 없는 ‘변명 입장문’으로 등 돌린 한국 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또 한 번 기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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