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도 없고 베스트5도 배출하지 못한 LG가 2위에 올랐다. ‘조상현 매직’이다.
창원 LG는 29일 울산 현대모비스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며 2위를 확정지었다. LG는 SK와 같은 36승 18패를 기록했고, 맞대결도 3승3패로 같았지만 골득실에서 앞섰다.
LG가 플레이오프 4강에 직행한 것은 문태종, 데이본 제퍼슨, 김종규, 김시래가 주축이었던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LG는 SK 대 KCC의 승자와 4강에서 만나 챔프전 진출을 다툰다.
LG 스타출신 감독은 성공할 수 없다?
비시즌 LG는 조성원 전 감독과 결별하고 남자대표팀을 이끌었던 조상현 감독을 선임했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슈터였던 그는 LG에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활약했던 스타출신이다. 은퇴 후 2013년부터 오리온에서 코치생활을 한 그는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LG는 현주엽 감독, 조성원 감독 등 프렌차이즈 스타들에게 지휘봉을 넘겼지만 실패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스타선수출신은 감독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지도자 경력이 탄탄하지만 프로감독은 첫 시즌인 조상현 감독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조상현 감독은 LG 훈련장에 걸린 자신의 현역시절 사진을 보며 “징크스를 깨야 하는데…”라며 부담감을 드러냈다.
공부하는 지도자는 달랐다. 미국농구명문 곤자가대학으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조상현 감독은 취미가 전력분석일 정도로 농구에 푹 빠져 살았다.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도 그는 10개 구단 경기장을 모두 돌며 직접 선수들을 살폈다. 선수들과 소통하고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이런 경험은 조상현 감독이 프로 첫 시즌에 흔들리지 않고 성적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지도자 생활을 오래 함께 한 임재현, 박유진, 김동우 코치진도 조상현 감독을 잘 보좌했다.
확실한 원칙으로 구축한 더블 스쿼드 시스템
조상현 감독은 원칙주의자다. 자신이 정한 시스템 안에서 노장이든 신인이든 규칙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기회를 주고, 지시를 어기면 가차없이 뺀다. 비시즌부터 선수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선수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 시즌 조상현 감독의 부임으로 달라진 대표적인 선수가 이관희다. 2021년 김시래와 유니폼을 바꿔 입은 이관희는 LG에 오자마자 주득점원에 주장까지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볼소유가 길고 승부처에서 난사하는 이관희는 효율이 떨어졌다. 수비에서 집중력도 떨어져 ‘하위팀 에이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조상현 감독은 이관희의 출전시간부터 손을 댔다. 주구장창 30분 이상 뛰지 않고 효율적인 시간안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도록 했다. 아무리 주장이라도 수비에서 구멍이 나면 가차없이 교체했다. 이관희는 올 시즌 LG 이적 후 가장 적은 경기당 24분 41초를 뛰었지만 2점슛 44.3%와 3점슛 34% 모두 이적 후 최고를 기록했다. 식스맨 출전까지 군말없이 받아들인 이관희는 식스맨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실 조상현 감독 부임 후 LG는 뚜렷한 전력보강이 없었다. 이재도와 이관희의 연봉비중이 높아 FA 선수 영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아시아쿼터 선수 저스틴 구탕과 1순위 신인 양준석 정도만 가세했다. 그나마 두 선수는 부상으로 시즌 중반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조상현 감독은 없는 살림에 확실한 더블스쿼드를 구축해 조직력을 배가시켰다. 존재감이 없었던 윤원상과 정희재, 정인덕을 주전감으로 키웠다. 이관희를 식스맨으로 돌리면서 벤치의 폭발력을 더했다. 단테 커닝햄, 김준일, 저스틴 구탕이 벤치에서 나오면서 주전 못지 않은 폭발력을 발휘했다. 팀의 핵심은 아셈 마레이와 이재도였지만 두 선수에게만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LG에서 부활한 삼성 트리오
FA를 앞둔 김준일은 LG에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김준일은 올 시즌 경기당 15분 35초를 뛰면서 8.2점, 3.3리바운드를 해줬다. 야투율이 53.6%에 달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김준일은 여전히 국내빅맨 중 최고의 공격스킬을 갖고 있다. 커닝햄, 구탕과 손발을 맞춘 그는 갈수록 위력을 떨쳤다. 공격력이 다소 떨어지는 LG가 경기내내 고르게 득점력을 유지한 비결이다.
LG의 약점인 3점슛을 메우기 위해 시즌 중 트레이드로 영입한 임동섭도 잘 써먹고 있다. LG는 뚜렷한 슈터가 없다. 마레이에서 파생되는 공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윤원상과 이관희 등은 3점슛 성공률이 너무 떨어진다. 장신슈터로 장점이 있는 임동섭이다. 그는 삼성에서 26.9%였던 3점슛이 LG에서 34.1%로 상승했다. 특히 친정팀 삼성과 첫 대결서 그는 시즌최다 15점, 3점슛 3/3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정규리그 2위를 했지만 LG는 스타가 없는 팀이다. 개인기보다 조직력으로, 공격보다 수비로 여기까지 왔다. LG는 경기당 80.1점으로 공격이 5위에 불과하지만 76.6점만 내준 수비로 1위에 올랐다. 리바운드는 37개로 현대모비스(37.4개)에 이은 2위다. 스틸은 7.5개로 가장 많았다.
공격에서 LG가 유일하게 1위에 오른 것은 벤치 득점력이다. 무려 34.4점을 기록하며 2위 DB(29.7점)보다 4점 이상 앞섰다. MVP 김선형과 최고외국선수 자밀 워니를 배출한 SK가 19.6점으로 벤치득점이 가장 적다. 결국 LG는 플레이오프에서도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 특유의 끈끈한 수비컬러를 유지해야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조상현 감독은 없는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능력을 인정받았다. 비록 감독상은 KGC를 우승으로 이끈 김상식 감독에게 돌아갔지만, 조상현 감독의 지도력 역시 못지 않았다. 4년 만에 창원팬들에게 ‘봄 농구’를 선사한 그의 매직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