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의 의미를 잊어버린 듯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민재(27, 나폴리)는 국가대표가 주는 ‘무게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 속 스스로 짊어진 책임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하던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인터뷰로 연결된 것이었다.
김민재는 29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은퇴 시사 논란’에 “의미가 잘못 전달됐다”고 입을 열었다.
전날 28일 김민재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열린 우루과이와 평가전(한국 1-2 패배) 이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체력적으로 힘들다. 멘털적으로 무너진 상태"라며 “당분간... 당분간이 아니라 그냥 지금 소속팀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축구적으로 힘들고 몸도 힘들다. 대표팀보다는 소속팀에 신경 쓰고 싶다”라며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김민재는 사전에 조율된 발언이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이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끝을 흐리며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일각에서는 대표팀 은퇴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가 태극마크를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김민재의 주가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소속팀 나폴리에서 주전 수비수 자리를 꿰찼고, 다수의 유럽 명문팀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주시하고 있단 소식이 외신을 통해 연일 들려오고 있다. 다만 대표팀만 오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가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12월 막을 내린 카타르월드컵 H조 2차전 가나와 경기(한국 2-3 패)에서 김민재가 지키고 있던 한국은 내리 3골을 허용했다. 당시 ‘16강행 분수령’ 경기로 불리며 ‘무실점 승리’를 목표로 한국은 맞대결에 임했지만 예상 밖 대량 실점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가나전 때 김민재는 부상 투혼 속 경기를 치른 터라 모두 그의 분투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폴리 철기둥’ 별명다운 면모는 찾기 힘들었다. 월드컵 16강 브라질전(한국 1-4 패)에서 한국은 전반에만 4실점했다. 냉정히 한국의 승리를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김민재 중심의 수비진이 전반전에만 4골을 허용하는 그림을 예측한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루과이전에 앞서 24일 콜롬비아(2-2 무승부)와 경기에서도 한국은 2실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후방 라인이 실점하니 김민재는 속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과 달리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하면서 김민재에게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한몫했을 터.
김민재는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수비진 부진을 꼬집는 질문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선수들과 더 말을 많이 해서 이겨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대 은퇴 시사로 읽힐 수 있는 말을 덧붙이고 29일 오전 별도의 인터뷰 없이 인천공항을 통해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29일 오후 김민재는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은퇴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믹스트존 인터뷰가 은퇴 가능성으로 이어진 것은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단지 힘들단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김민재는 “대표선수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 국가대표팀 경기에 선발로 출전할 때, 단 한 번도 당연시 여기지 않았다”며 “잔 부상이 있다는 이유로 비행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경기가 많아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열심히 안 한 경기가 없다. 모든 걸 쏟았고 죽어라 뛰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어제의 인터뷰로 제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 49경기는 없어지고 태극마크의 의미, 무게, 모든 것들을 모르고 가볍게 생각하는 선수가 돼버렸다”면서 “마냥 재밌게만 했던 대표팀에서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멘털적으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경기장에서의 부담감, 나는 항상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수비수로서 실점했을 때의 실망감, 이런 것들이 힘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민재는 “단 기간에 모든 부분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었음을 알아주시고 대표선수로서 신중하지 못한 점, 성숙하지 못한 점, 실망했을 팬, 선수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 센터백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바로 ‘붙박이 주전’ 김민재다. 그는 소속팀 이탈리아 나폴리, 대표팀에서 부상 제외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죽어라 뛴 그는 결국 정신적으로 흔들릴 만큼 방전되고 말았다. 한 경기 한 경기 뛸 때마다 책임감은 배가 되고,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면 배 이상의 자괴감이 김민재를 억누르고 있었다.
“소속팀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의 말속에 숨겨진 뜻은 국가대표 자리를 쉽게 생각해서가 아닌, 그 무게감이 상당하기에 자괴감을 떨치고 싶단 것일 수 있다.
김민재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제가 축복받은 선수임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힘든 마음을 잘 추스르고 돌아올 것임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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