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용서 후 '오해'는 말아달라? KFA의 속 보이는 '날치기 촌극'
OSEN 고성환 기자
발행 2023.03.29 14: 35

 날치기로 승부조작범 사면을 결정해놓고 오해는 말란다. 속이 보여도 너무 보이는 대한축구협회(KFA)다.
KFA는 28일 오후 7시경 갑작스레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라고 발표했다.
사면 대상자는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는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이다. 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됐다. 협회가 사면 조치를 단행한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14년만이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승부조작을 용서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그 명분은 더욱 어이가 없다. KFA는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이유로 내세웠다.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을 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라는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이야기도 덧붙였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명이다. 승부조작은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다. 공정성과 신뢰라는 기본 원칙을 잃은 프로스포츠는 살아남을 수 없다. 12년 전 K리그가 승부조작 스캔들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KFA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용서했다. 이번 사면은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뜻깊은 16강 진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다. 후배들이 피땀 흘려 일궈낸 성과가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삼류 코미디만도 못한 촌극이다.
승부조작 선수 사면은 지난 2011년에도 논의된 바 있다. 당시 해당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사면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KFA가 일방적으로 사면을 발표하며 변수를 차단해버렸다. 이제는 승부조작도 10년 정도만 기다리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돼버렸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A대표팀 선수들이 만원 관중 앞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2023.03.24 / dreamer@osen.co.kr
발표 시점 역시 '날치기'였다. KFA는 이번 사면 안건을 밀실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우루과이전 킥오프 1시간 전에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5분 후 우루과이전 선발 명단을 공개했다. 
기자들의 취재와 팬들의 관심을 최대한 피하려는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KFA 바람대로 이번 사건은 쏟아지는 경기 관련 기사에 묻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축구 팬들을 기만하는 날치기 그 자체였다.
그래 놓고 KFA는 아무도 믿지 않을 해명을 덧붙였다. KFA는 사면받은 100인 명단도 공개하지 않은 채 "승부조작 경우에도 비위 정도가 큰 사람은 사면 대상에서 뺐다"라며 "이번 사면이 승부조작에 대한 협회의 기본 입장이 달라진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마치 승부조작에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작은 비위가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심지어는 그 기준조차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승부조작에 대한 협회의 기본 입장이 달라졌다'라는 이야기는 오해가 아니라 정당한 비판으로 보인다.
카타르 월드컵 이후 K리그에는 순풍이 불고 있다. K리그1은 개막 라운드부터 총 10만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며 승강제 도입 이후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한때 겨울을 겪었던 K리그에도 다시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KFA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지는 못할망정 핵폭탄을 떨어트렸다. '대한축구협회'가 일부 축구인만의 편익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 축구 발전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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