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의 경기 개입 및 감독 경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딛고 정규리그 왕좌에 오른 흥국생명. 팀의 에이스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연경은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고 15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흥국생명은 지난 15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과의 6라운드 원정경기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승리하며 남은 1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 지었다.
흥국생명은 박미희 감독 시절이었던 2018-2019시즌 이후 4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따냈다. 지난 시즌 6위(10승 23패) 부진에 이어 이번 시즌 또한 4라운드까지 ‘절대 1강’ 현대건설에 밀려 2위에 머물렀지만 김연경 리더십과 신구 조화를 앞세워 짜릿한 역전 1위를 해냈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김연경은 2007-2008시즌 이후 무려 15시즌 만에 정규리그 1위의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후 만난 김연경은 “긴 시즌이었는데 정규리그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기분 좋다. 어려운 순간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선수들과 같이 잘 뭉치면서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감격의 소감을 전했다.
김연경의 말대로 흥국생명은 올 시즌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선두 현대건설을 맹추격하던 1월 2일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이 돌연 동반 사퇴하는 악재를 맞이했고, 흥국생명 구단은 뒤늦게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윗선의 경기 개입 사실을 시인했다. 권 감독의 경우 말이 사퇴이지 사실상 경질 조치를 당하며 쫓겨나듯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후 이영수 수석코치마저 팀을 떠나며 1987년생 김대경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위기를 수습해야 했다.
김연경은 “먼저 권순찬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팀은 비시즌부터 시즌 초반까지 잘 나가는 상황이었다. 감독님 덕분에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며 “경질 사태 때 누구보다 힘들었는데 (김)해란 언니가 잘 버텨줘서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나 또한 언니가 참고 하는 모습을 보고 힘내려고 노력했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온 베테랑 리베로 김해란은 “당시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런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거니까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힘들지만 서로 단단히 뭉쳐서 이겨냈다. 특히 (김)연경이에게 고맙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참고 팀을 이끌어줬다”라고 김연경에게 감사를 표했다.
온갖 풍파에도 흥국생명이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른바 ‘김연경 효과’였다. 김대경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며 순위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김연경이 중심을 잡고 선수들의 동요를 막았다. 동료들의 심리 케어는 물론 공격성공률 1위, 득점 5위의 경기력을 앞세워 선두 현대건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연경은 “솔직히 내 영향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당연히 있다. 팀에 좋은 영향을 줬고, 좋은 결과가 나와 너무 좋다. 좋은 영향을 줘도 좋은 결과를 내긴 쉽지 않다. 선수들이 다 같이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정규리그 왕좌에 오른 흥국생명은 오는 29일부터 플레이오프 승자와 5전 3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에 돌입한다. 3승 고지를 선점하면 2018-2019시즌 이후 4시즌 만에 통합우승 대업을 이룰 수 있다.
김연경은 “우리가 유리한 건 맞다. 정규리그가 아직 1경기 남아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겼다. 여기에 두 팀을 준비할 필요 없이 한 팀만 준비하면 된다”라며 “잘 준비해서 챔프전까지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 아래 팀들이 3차전까지 하고 올라오길 바란다”라고 통합 챔피언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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