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월전(月田) 장우성 화백은 수필집 『화맥인맥(畵脈人脈)』(1982년)에서 월북 화가인 근원(近園) 김용준을 일러 “그 서슬 퍼렇던 일제 강점기에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지 않았다. 근원은 (서울) 성북동에 늙은 감나무가 있는 노시산방(老柿山房)에 살면서 감나무와 조화를 이룰 여러 가지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고 회고했다.
『근대서지』 26호가 6.25 민족상잔 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23일 치 『경향신문』에 실린 김용준의 수필 ‘원망(怨望)’과 월북 시인 오장환의 시 ‘나의 노래는 우리들의 피ㅅ속에’를 발굴, 수록했다.
6.25 전에 남한에서 쓴 마지막 수필로 추정되는 김용준의 ‘원망(怨望)’은 장우성 화백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 ‘화초를 아끼고 즐겨 가꾸며'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시켰던 화가가 ‘애솔(松)’을 사는 과정에서 골탕을 먹은 일을 풀어낸 것이다. 오장환의 시는 『학생동무』 제1집(1946년 12월 1일. 동흥서적 발행)에 게재된 것을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가 찾아냈다.
『근대서지』는 ‘서지의 보고’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는 발굴 노력으로 매호 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조영복 『근대서지』 편집위원장(광운대 교수)은 ‘지식 공동체’로서의 근대문학 서지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자료들이 흩어져 있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은닉돼 있다. 오류의 텍스트가 오류의 설명을 낳고 오독을 재생산한다.”고 전제, “문학연구자와 서지학자들, 장서가들의 협업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협업’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근대서지』는 ‘미개(未開)’했던 문학 서지적 풍토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이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손이 가는 것은 그것이 ‘앤틱재(antique材)’로서의 물질적 가치 때문은 아니고 오래되고 낡고 버려져 있는 것에 문득 ‘나 자신의 초상’이 투영되기 때문”이라는 조영복 편집위원장의 고백은 『근대서지』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깊은 공명(共鳴)을 부른다.
‘텍스트의 원문(원본)의 여실한 실제 상황을 확인시켜주는’ 『근대서지』는 현역 시인들의 시와 옛 문인들의 시나 수필을 싣는 문원(文苑), 서지와 매체(書誌 媒體), 문학, 예술, 역사 서지 등으로 나누어 발굴과 재조명, 재해석에 충실한 학회지다.
『근대서지』 26호(근대서지연구소 발행, 민속원 제작)에는 그 같은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해방기 출판의 특이성 살펴볼 수 있는 옛 잡지와 만화가 눈길을 끈다.
『근대서지』 25호부터 해방 이후 의학 분야 잡지를 찾아내 학계에 알리고 있는 연세대 의대 동은 의학박물관의 정용서 학예실장은 이번 호에 『조선치계(朝鮮齒界)』 창간호(1946년 5월 1일, 조선치계사 발행)와 『의우(醫友)』 창간호(1947년 5월 의우회 발행), 그리고 『(임상의학)臨狀醫學)』 창간호(1949년 1월호) 등 의학전문 잡지 3권을 상세히 소개했다.
흔히 오복(五福)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건치(健齒)’에 대한 해방 이후 치과의사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조선치계(朝鮮齒界)』 창간호는 치과 의인(醫人)과 상인(商人)이 협력해 간행했다. 치과 의인은 “후생 부문에 있어서 치과 의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그 학리를 구명하고 추구하고 파악함으로써 씩씩한 조선 인민의 보건을 확수(確守=굳게 지킴)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세계적 치과 의학 수준에의 향상 도달을 도모” 한다는 잡지 발행의 취지를 설명해 놓았다.
『근대서지』 26호에는 서지연구가 문승묵 씨 제공으로 김태형의 만화 『흥부와 놀부』를 중심으로 백정숙 만화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가 ‘해방기 만화 단행본 출판의 출발점’을 살피고 있다.
해방 이후 국정교과서 삽화가로도 잘 알려진 김태형의 만화 『흥부와 놀부』는 1946년 6월 20일 동화출판사가 발행한 단행본으로 표지는 흥부가 박을 타서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등재후보지로 선정된 이후 본격 논문도 수록(기획과 일반논문)하고 있는 『근대서지』는 권말자료와 권말영인을 꾸준히 싣고 있는데 이번 26호에는 오영식 근대서지학회장의 연재물 ‘해방기(1945-1950) 간행잡지목록’ 정리 ‘미음(a)’ 편이다. 잡지 목차와 필자 명, 색인을 곁들여 연구자들이 반색할 수 있는 자료를 친절하게 정리해놓았다.
사진 제공=근대서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