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토트넘 홋스퍼의 수비형 미드필더 역을 연기하는 올리버 스킵(23)은 지난 26일(이하 현지 일자)을 잊지 못할 듯싶다. 길이 마음속에 새기고 추억할 만한 ‘인생 골’을 터뜨렸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다.
이날 첼시와 치른 (서북) 런던 더비에서, 스킵은 후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초에 선제 결승골을 뽑아냈다. 수년 동안 ‘가슴앓이’를 하던 스킵에겐 무척 뜻깊은 한 골이었다.
스킵은 토트넘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팬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출신으로, 유스팀에서 5년 동안(2013~2018년)이나 활약했을 만큼 ‘토트넘의 적자(嫡子)’다. 자연스럽게 스킵은 2018년 7월 1일 토트넘과 계약하고 1부리그에 데뷔했다.
그러나 스킵은 이후 안타까운 나날을 보냈다. ‘임대생’으로 노리치시티에 몸담았던 한 시즌(2020-2021)을 빼곤 줄곧 토트넘에서 미래를 꿈꿨으나, 뜻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토트넘에서 다섯 번째 무대를 맞이한 2022-2023시즌 중반전이 다 흘러가도록 골과 연(緣)을 전혀 맺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적 첫 골이었겠는가. 홈(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첼시와 맞붙은 런던 더비 전까지 EPL 42경기를 비롯해 FA컵 6경기, EFL(카라바오)컵 9경기, 유럽 클럽 대항 9경기 등 총 66경기를 소화하면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했으니, 그 감개무량함이 어땠을지 눈앞에 그려진다.
마침내 67경기 만에, EPL에선 43경기 만에 첫 골을 터뜨린 스킵은 한껏 치솟으며 포효를 터뜨렸다. 악몽 같았던, 길고도 어두웠던 터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자신에게뿐 아니라 팀에도 무척 의미 있는 골이었다. 이번 시즌 첼시 상대 전적에서, 우위(1승 1무)에 나서는 귀중한 위닝골(Winning Goal)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스킵이다. 지난해 8월 14일 어웨이(스탬퍼드 브리지)에서 2-2로 비겼던 토트넘은 이날 안방에서 스킵의 맹활약에 힘입어 2-0으로 완승하며 우위를 점했다. 이 경기에서, 스킵은 8.0(이하 후스코어드닷컴 기준)으로 두 팀 통틀어 최고 평점을 받았다.
첼시와 치른 맞수전에서, 토트넘은 유독 열세를 면치 못했다. 2010-2011시즌부터 2021-2022시즌까지 첼시에 단 한 번도 앞서지 못하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2패의 수모를 당한 시즌도 2회(2019-2020·2021-2022)나 된다. 1무 1패로 밀린 시즌은 3회(2012-2013·2013-2014·2020- 2021)다. 백중세는 1승 1패가 4회(2014-2015·2016-2017·2017-2018·2018-2019), 2무가 3회(2010-2011·2011-2012·2015-2016)였다. 한마디로, 시즌별 상대 전적에서, 토트넘이 7무 5패로 절대 약세였다.
비로소 토트넘은 2010년대 이후 열세 시즌 만에 처음 첼시에 앞서며 한을 씻어 냈다. 그리고 그 주역은 스킵이었다.
스킵 EPL 데뷔골이자 토트넘 첫 골 감격… 역대 열두 번째 후반전 최단 시간 득점 기록
기록적으로도, 스킵은 뚜렷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후반 19초 만에,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광석화 같은 중거리슛을 작렬해 뽑아낸 스킵의 인생 골은 EPL 기록사적으로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6년 EPL의 모든 골 계시 기록이 시작된 이후, 후반전 가장 이른 득점 기록을 보면 스킵의 한 골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때부터 기준으로 했을 때, EPL 후반전 최단 시간 득점 기록 12위에 오를 만큼 상당히 빠르게 터진 골이다(표 참조).
단지 뜻밖인 점은 스킵보다 이른 시간의 득점 기록을 세운 선수가 11명씩이나 된다는 것이다. 8초 만에 상대 골문을 연 새미 아메오비를 필두로 18초에 골을 뽑아낸 잭 콜백까지가 그 면면들이다.
새미 아메오비(미들즈브러)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둥지를 틀었던 시절인 2014-2015시즌(2014년 10월 26일)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후반 시작 8초 만에 골을 터뜨려 이 부문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을 세웠다.
디르크 카윗(리버풀·이하 당시)과 세르히오 아게로(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는 단 1초 차로 그 뒤를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카윗은 2007년 1월 30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아게로는 2011년 9월 18일 풀럼전에서, 각각 후반전이 시작된 지 9초 만에 상대 골문을 열어젖혔다.
이번 시즌 EPL에서, 스킵은 10경기(교체 5)에 모습을 나타냈다. 소화한 시간은 379분으로, 경기당 평균 38분이 채 되지 않는다. 90분을 완전히 소화한 경기는 지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2월 19일)이 처음이었다. 그 경기에서, 평점 7.45를 받으며 뭔가 큰일을 해낼 듯한 기색이 엿보였던 스킵이다.
스킵은 EPL 데뷔 골이자 토트넘 둥지에 낳은 첫 골을 한꺼번에 이뤘다. 그 계기가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리며 발현될지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