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 축구 맹주다.'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선뜻 확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대답이 양분돼 팽팽히 맞서지 않을까 싶다.
한때는 참인 듯 보였다. ‘한국 축구 = 아시아 맹주’ 등식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의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린 이 ‘진리’에 힘입어, 한국 축구팬들이 자부심을 곧추세울 수 있었던 그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분명 존재했다.
지금은 어떤가? 의문을 품고 이를 나타내는 이들을 왠지 반박하기가 멋쩍은 오늘날이다. 꾸준한 일본의 성장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급신장한 중동세에, 어딘가 기세가 주춤해진 듯한 한국 축구다.
위 명제가 참임을 역설하는 이들은 대표적 보기로 월드컵 성적을 내세운다. 확실히, 한국 축구가 이룬 월드컵 4강 위업(2002 한·일)과 10연속 본선 진출 등은 아시아를 대변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아니, 넘칠 정도다. 통산 성적에서도, 아시아 1위(7승 10무 21패)를 달리는 한국 아닌가.
그러나 지평을 아시아 무대로 좁히면 마음속 한구석에 개운치 않은 씁쓸함이 자리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아시아 축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성적은 그 실례다. 원년 대회(1956 홍콩)부터 2연패하며 아시아에 군림했던 한국이건만, 그 권좌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제18회 대회(2019 아랍에미리트)까지 59년간 정상 복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위 명제는 거짓이란 말인가? 아니다. 한 나라의 축구 역량을 국가대표팀이 거둬들인 전과로만 가늠할 수는 없다. 물론, 국가대표팀이 어떤 궤적을 그리느냐가 중요한 잣대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부분일 뿐이다. 국가대표팀과 나란히 한 국가 축구 저력의 양축을 이루는 프로가 또 하나의 척도로 떠오르는 이유다.
이 연장선 위에서 봤을 때, 위 명제가 참에 가까움을 입증하는 객관적 자료는 눈여겨볼 만하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30일까지 최근 잇달아 발표한 2022년 세계 랭킹 아시아 분야에서, 한국은 ▲ 리그 ▲ 남자 클럽 ▲ 여자 클럽 부문을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막연한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각종 국내외 대회 성적을 점수화해 그 총합으로 매긴 등위라서, 한결 신뢰성이 돋보이는 객관적 자료다.
한국, 2022년 아시아 축구 리그-남녀 클럽 등 3개 부문 모두 석권하며 지존으로 올라서
IFFHS는 지난 한 해(1월 1일~12월 31일) 동안 각 국가 리그와 소속 남녀 클럽이 국내외 대회에서 거둔 전과를 수량화해 등위를 매겼다. 이에 따라 산출된 총 점수를 바탕으로 발표한 2022년 아시아 축구 3개 부문에서, 한국 축구는 압도적 격차를 보이며 1위를 석권했다. K리그가 여유 있게 정상을 밟았음은 물론, 남녀 클럽은 1~2위를 모두 차지하는 맹위를 떨쳤다(표 참조).
먼저 프로리그 부문에서, 한국(K리그)은 일본(J리그)을 압도했다. 525.25점을 획득한 K리그는 402점을 얻은 J리그를 123.25점 차로 크게 따돌렸다. 1983년 출범한 K리그가 1992년 닻을 올린 J리그에 생강은 오래될수록 더욱 매움을 일깨운 모양새다.
K리그는 아시아에선 절대 강자임을 다시 한번 뽐냈다. 2011년부터 12년 연속 ‘아시아 1위’에 군림한 지존의 풍모가 무척 돋보였다.
K리그는 세계적으로도 부각됐다. 전 세계 18위에 오름으로써 발전하는 아시아 축구의 기수임이 엿보였다. 지난해 22위에서 네 계단 뛰어오른 상승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남자 클럽 부문에서, K리그는 절대 강세를 나타냈다. 가뿐하게 1위를 차지한 전북 현대(165점)를 비롯해 3개 클럽이 10위권 안에 자리했다. 울산 현대가 2위(121점)에, 대구 FC가 4위(104.75점)에 각각 올랐다.
J리그는 양적으론 한국과 같았으나 질적으로 크게 처졌다. 가장 좋은 순위가 5위(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98점)였고, 이어 6위(가와사키 프론탈레·93.5점)와 9위(요코하마 F. 마리노스·88.5점)에 각각 자리했다.
여자 클럽 부문에서도, 한국(WK리그)의 초강세는 이어졌다. 2009년에 출범해 짧은 연륜임에도 불구하고 10위권 안에 4개 클럽이 포진하며 포효했다. 1위 인천 현대제철(114점)을 필두로, 2위 경주 수자원(111점)→ 6위 화천 KSPO(84점)→ 8위 수원 FMC(81점) 등이 WK리그의 우월성을 앞장서서 알렸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 형세였다.
WK리그보다 20년이나 앞선 1989년 창설된 일본 여자축구리그는 체면치레하는 데 그쳤다. 우라와 레즈와 INAC 고베 레오네사가 공동 3위(105점)에 자리했음을 위안 삼은 꼴이었다.
자신감과 자만감은 한 글자 차이지만, 결과로 나타난 간극은 엄청나다. 발전은 늘 깨어 있을 때 가능하다. 긴장을 늦추고 해이해질 때, 답보 또는 퇴화는 피할 수 없다. 한국 축구가 늘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고 달려가야만 하는 까닭이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서 또 기수로서 세계 축구의 중심권에 진입하기 위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