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잘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장래성이 엿보임을 뜻하는 우리네 속담이다.
광주 FC 영건 엄지성은 이 말에 딱 어울린다. 2002년 5월 9일생으로, 약관(弱冠: 20세)의 나이임에도 벌써 큰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뽐내고 있다. 프로 2년생이던 2022시즌, K리그2 영플레이어상을 거머쥔 데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잠재력이다.
광주는 지난 2년간 부침의 세월을 보냈다. K리그1에서 K리그2로 떨어졌다가 K리그1로 되돌아왔다. 2021시즌 프로 마당에 뛰어든 엄지성은 팀과 영욕의 시간을 함께했다. 갈마드는 삭풍(강등)과 훈풍(승격)에 맞닥뜨리면서, 정신적 성숙과 함께 기량도 시나브로 발전했다.
엄지성의 성장은 국제적으로도 입증받았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선정한 AFC(아시아축구연맹) 남자 U-20팀에 당당히 얼굴을 내밀었다. 큰물에서 뛰어놀 대어임을 한국인의 주관적 시각이 아니라 제3의 객관적 눈으로 인정받았다. 엄지성이 한결 자긍심을 부풀리며 2023년을 기약하는 배경이다.
오른쪽 윙어의 주인공으로 이름 올려… K리거 중 유일
29일 오후(한국 시각), IFFHS는 AFC 남자 U-20 베스트 11을 선정해 발표했다. 아시아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약관의 기대주들로 구성된 U-20팀에, 엄지성은 K리거 가운데 유일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다. 4-3-3전형으로 짜인 이 팀의 오른쪽 윙어의 주인공으로 낙점돼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켰다.
◆ IFFHS 선정 AFC U-20팀
▲ GK = 사사키 마사토(일본) ▲ DF = 조슈아 롤린스(호주) 자셈 가베르(카타르) 차세 안리에(일본) 조던 코트니-퍼킨스(호주) ▲ MF = 캐머런 페우피온(호주) 알락산데르 아오라하(이라크) 자수르베크 잘롤리디노프(우즈베키스탄) ▲ FW = 엄지성(한국) 압둘라 라디프(사우디아라비아) 하리브 수하일(UAE)
호주가 수비수 4명 가운데 2명(조슈아 롤린스, 조던 코트니-퍼킨스)이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며 모두 3명이 뽑히는 강세를 보였다. 일본이 GK 사사키 마사토를 비롯해 2명이 이름을 올려놓으며 그 뒤를 이었다. 그 밖의 여섯 자리는 한국을 필두로, 카타르·이라크·우즈베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UAE(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이 각각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엄지성은 광주 유스팀인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정호연-허율-조성권-주영재 등과 함께 ‘금호고 르네상스’를 연 주역에 걸맞은 행보였다.
신인이던 2021시즌엔, 대어의 편린을 내비쳤다. 37경기에 출장해 4골 1어시스트를 거둬들였다. 신예로선 그런대로 봐줄 만한 기록이었다. 그렇지만 이름값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2022시즌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28경기를 소화하며 9골 1어시스트를 결실했다. 출장 경기 수는 더 적었음에도, 공격공헌도는 2배로 풍성해진 작황이었다. 또한, 외국인 선수인 헤이스(12골)를 제외하고 국내파 가운데 최다골을 터뜨렸다. 광주가 구단 역사상 최다이며 압도적 승점(86)으로 K리그1 승격을 이루는 데 일등 공신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지난해엔, ‘태극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2022 AFC U-23 아시안컵에 태극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이에 앞서 2019년, 엄지성은 태극 마크와 첫 연(緣)을 맺었다. 2019 브라질 FIFA(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에서, 한국이 8강에 오르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첫판 아이티전 전반 26분 멋진 프리킥 선제골을 뽑아 서전을 장식(2-1승)하는 데 앞장섰다.
절치부심의 2022년을 보낸 엄지성은 올해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K리그 베스트 11을 노리며 아울러 황선홍 사단 재발탁을 겨냥하고 있다. 첫 번째 토끼를 몰 사냥터는 K리그1이며, 두 번째 토끼를 쫓을 사냥터는 1년 연기돼 오는 9월 열릴 2022 항저우(杭州) 아시안 게임이다.
비약의 나래를 활짝 펼 토대는 이미 깔렸다. IFFHS 선정 AFC U-20팀에 얼굴을 내밂으로써 모티프는 마련된 셈이다. 엄지성의 또 다른 ‘사냥 본능’이 번뜩인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